북한 출장 방문기

 

2007. 12. 30

 

남북경제협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부가 주관하는 대북 조선협력 2차 실사단 일원에 끼어 1214일부터 45일 여정 속에 평양, 원산, 안변 지역을 둘러보고 왔다. 보통지역이 아니듯이 가기 전부터 세 번이나 출발 일정이 바뀌었다. 최종 확정된 14일 코엑스에서 통일부가 주관한 방북 교육을 받고 나서조차도 북측의 확인 연락이 오지 않았을 정도였다. 정말 가기는 가는가 하고 고개를 저을 만큼 아득한 곳이라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베이징 국제공항 내부 photo 김재민
베이징 국제공항 내부 photo 김재민
베이징 국제공항 내부 photo 김재민
베이징 국제공항 내부 photo 김재민

어쨌든 출발 당일 날 오후 2시 쯤 판문점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예정대로 경유지인 북경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1시간 40여 분 후 북경공항에 도착하니 수 년 전 상해공항에 내렸을 때처럼 터미널 구조는 비슷했으나 공항요원들의 표정과 행동은 2008년 올림픽 개최를 의식한 듯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최소한 인천공항 수준은 충분히 따라온 것 같았다. 마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한번 치른 뒤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과 간접 인프라들이 글로벌 수준에 훨씬 빨리 다가선 것처럼 중국도 그런 선순환 커브에 조만간 들어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첫날 숙박지인 북경 크리스탈 호텔에서 동행한 시설부 김 차장과 맥주 한 잔하며 첫 밤을 보낸 뒤, 이튿날 서두르며 9시에 북경공항으로 향해 오후 2시에 평양으로 출발하는 고려민항편의 탑승수속대 앞에 섰다. 1주일에 3편 있다는 북경-평양 노선은 의외로 만석인 듯했다. 수속 밟기 위해 우리 일행이 서 있는 옆줄에는 남쪽 사람들이 아닌 복색의 근로자풍 사람들이 있었다.

 

짐작컨대 우리의 7, 80년대처럼 중동 건설시장에 단체로 취업 나갔다 귀환하는 북쪽 아저씨들이었다. 무더운 작업 환경에서 고생을 많이 한듯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고 피곤한 표정들이었다. 그들도 우리가 남측에서 온 사람들이란 것을 일견에 알아챘겠지만 별다른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그 점에서는 우리측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베이징 공항의 고려항공 탑승대 photo 김재민
베이징 공항의 고려항공 탑승대 photo 김재민

보안검색을 마치고 출국장에 들어서 고려항공 탑승 게이트 근처에 가니 같이 수속을 마친 한 무리의 북측 근로자들이 비행기 보딩을 기다리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좀 떨어져 자리 잡으려 했지만 나는 일부러 북측 사람들 속에 들어가 앉았다.

 

그들 간에 오고가는 얘기를 좀 듣다 옆에 앉은 아저씨에게 우리 일행은 남북 협력 건으로 평양 가는 팀이라고 밝힌 뒤 어디에서 일하다 들어가는 길이냐고 말을 걸었다. 의외로 선선히 쿠웨이트와 카타르에서 한 2년간 일하다 들어간다고 답해 주었다. 2천 명 정도 현지에서 일한다는 말도 전해주었다. 남쪽기업과는 고용계약을 맺은 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적은 아직 없다 했다.

 

보딩 시간이 되어 일어설 채비를 하는데 이 양반이 자기 동료들이 전해 준 코카콜라 캔을 따서 나보고 먼저 한 모금 하라 권하는 게 아닌가? 순간 마음 속 깊이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 이런 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의 DNA가 작동한 것이리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최대한의 감사한 표정으로 한 모금한 뒤 다시 건네주었다.

 

그 양반 역시 짦은 순간 자신의 마음을 받아 준 남쪽 친구에게 흐뭇한 기분으로 캔을 되돌려 받아 오래된 친구들과 돌려 마시는 양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대어 마셨다.

 

서로 감사의 목례를 나눈 다음 우리 일행 쪽에 합류하여 고려항공 비행기에 올라탔다. 구소련제 일류신이거나 투플레프 기종 같았는데 예상대로 보잉이나 에어버스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기내시설이 구닥다리 그 자체였다. 거기다 앞자리와의 간극마저 터무니없이 짧아 비교적 소형 체구를 가진 내게도 앉아서 옆으로 몸을 돌리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좁은 내부좌석 배치 photo 김재민
좁은 내부좌석 배치 photo 김재민

100킬로를 넘나드는 거구의 김 차장은 평양까지의 1시간 반 정도 비행기간 중에 거의 죽는 줄 알았다고 착륙 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고려항공의 내부와 스튜어디스 photo 김재민
고려항공의 내부와 스튜어디스 photo 김재민

여승무원들의 미모는 남쪽 스튜어디스들에 비해 그리 떨어질 바 없었으나 몸에 배인 친절한 미소와 접대 태도 등은 아무래도 체제가 체제인 만큼 이해하고 넘어가야 했다. 비행 중에 한번 기내식이 나왔는데 좁아터진 공간에서 앞좌석에 붙은 받침판을 펼쳐 먹는 것이 장난이 아닐 정도로 고역이었다.

 

체구가 조금만 큰 승객에게는 받침판이 90도로 펴지지도 않았다. 내게는 앉은 좌석이 착석할 때부터 90도로 올라오지 않아 뒤쪽으로 한 15도 정도 제껴진 채 마치 우주항공사들의 이륙 자세처럼 식사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소개된 기내식(내가 받은 것과 좀 다름) photo 김재민
인터넷에 소개된 기내식(내가 받은 것과 좀 다름) photo 김재민

좀 과장하면 식사 중 여러 번 아우슈비츠나 시베리아 강제수용소 수감수처럼 살기 위해서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음식을 입에 넣어야 한다는 극한상황 그림이 머릿속을 계속 스쳐갔다. 곽밥이라 하는 커다란 도시락 케이스에 밥, 닭고기, 빵과 함께 찹쌀떡 같은 후식이 들어 있었다.

 

음료 서비스도 하는데 맥주를 시키니 커다란 병맥주를 가져다니며 일회용 컵에 한 잔씩 따라 주었다. 물을 주문하는 승객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제공했다. 여기에서부터 벌써 뭔가 애잔한 마음이 찡하게 들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 착륙하게 되었다. 하강하는 동안 아래를 보니 활주로 외에는 잔디 형태로 손질되어 있지 않은 잡초 땅들이 그냥 그대로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지 않은가? 과연 북한답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승객수송 버스를 타고 공항건물 앞에 이르니 북측 안내원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런데 이들은 동행한 우리 공무원들 다섯 명의 이름만 호명하더니 따로 귀빈실로 가게 하고 나머지는 일반 수속대로 보내었다. 관료적 마인드가 뿌리 깊은 듯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구소련군의 털모자와 긴 외투 복식을 한 북한 공항요원들의 표정은 연전에 금강산 관광가기 위해 민통선을 지날 때 검문하던 북측 군인들과는 판이할 정도로 여유로워 보였다. 여성요원들은 따로 선발된 듯 대부분 자연산 미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컴퓨터 시스템이 잘되어 있지 않은 듯 일일이 수작업으로 일을 하는 바람에 얼마 안 되는 입국객들 가지고도 한 시간이 넘게 수속시간이 걸렸다.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대우제 중고버스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부가 잘 정비된 차량에 올라타니 북측 안내원들도 군데군데 동승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수인사를 나눈 뒤 묵을 고려호텔로 가는 길에 접어들자 창문 양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북녘의 풍경을 부지런히 눈에 담았다. 도로는 4차선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으나 통행하는 차량 수는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위로 뻗은 싸리비 나무 같은 가로수가 가는 길에 드문드문 늘어서 있는 게 처음 밟아보는 북녘의 풍치에 한결 더 이국적인 느낌이 들게 했다. 전 세계에 들이닥친 산업화의 거대한 물결이 오직 여기에는 아직 미치지 못한 듯 무슨 별세계 같은 보호구역에 들어선 듯했다.

 

옆에 앉은 온화한 표정의 안내원과 가벼운 가족 얘기를 교환하며 한 20분 쯤 달리니 드디어 평양 시내에 반듯반듯 세워진 콘크리트 다주택과 대리석으로 마감재를 쓴 몇몇 거대한 공공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깥은 막 어둠이 들어서려 하는 석양 속에서 영화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에 나오는 냉전시대 동베를린 시가처럼 단정하지만 어딘가 우수어린 회색 톤의 무미건조함이 군데군데 배어 있었다.

 

외투에 손을 넣은 채 빠른 걸음으로,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바쁘게 귀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남쪽의 도시들에서처럼 삶의 역동성 같은 현실감으로 와 닿지 않았다. 군데군데 건물 위에 걸려져 있는 붉은 색의 혁명구호와 띄엄띄엄 보이는 무슨무슨 상점같은 간판을 내건 단층 건물들이 드디어 말로만 듣던 은둔과 수수께끼로 점철된 기묘한 사회주의 국가에 들어섰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평양 고려호텔(50층) 전경 photo 김재민
평양 고려호텔(50층) 전경 photo 김재민

드디어 버스는 북한 내 최신 시설을 자랑하는 고려호텔 앞에 당도했다. 로비로 들어서니 서구호텔식 복식을 한 포터들과 문지기가 우리 남쪽 손님들을 이제는 자주 본다는 듯한 표정과 태도로 물끄러미 쳐다보며 맞아 주었다. 로비의 규모는 널찍했지만 전기 사정이 좋지 않은 듯 휘황찬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놀라운 것은 미 달러가 더 이상 각종 가격표들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달러 약세라는 전 세계적 현상이 이곳 은둔의 나라에도 영향을 미쳐 이미 2년 전부터 서방측 투숙객들에게 유로화로 숙박비와 각종 봉사료로 지불하게 한다고 했다.

고려호텔 로비에서 photo 김재민
고려호텔 로비에서 photo 김재민

김 차장과 같은 방을 배정받아 들어가 보니 객실 수준은 남쪽이나 서구국 호텔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아 보였다.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동급 룸 수준에서 평균은 되었다. 미니 냉장고를 열어보니 신덕산 샘물과 룡성 맥주가 각 두 병씩 들어 있었다. 샤워를 한 후 남쪽에서 가져간 육포를 안주 삼아 맥주 한 잔씩 하며 바깥을 내려다보니 가로등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맞은편 건물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도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

 

저녁 7시부터 2층 대식당에서 북측이 마련한 환영만찬이 있다는 전갈이 왔다. 가보니 분홍색 한복을 입은 북측 도우미들과 나비넥타이에 밝은 베이지색 양복을 입은 남자 종업원들이 다섯 개 정도의 원형 테이블에 앉게 된 남측 손님들을 정성껏 접대했다.

 

우리측 산자부 대표와 북측 육해운성 대표가 의례적인 환영사와 답사를 나눈 뒤 각 테이블에 중간중간 끼어 앉은 북측 요원들과 수인사를 다시 나누며 코스로 나오는 음식과 북한산 소주를 음미했다. 음식은 깔끔했지만 특별한 진미라고는 할 수 없었다.

고려호텔 만찬연 김 차장(중앙)과 photo 김재민
고려호텔 만찬연 김 차장(중앙)과 photo 김재민

평양에서의 첫밤을 숙면으로 보낸 뒤 평양 액센트로 손님 일어나십시오하는 북측 프런트 여안내원의 모닝콜을 들으며 6시 반에 기상했다. 서둘러 샤워와 세면을 하고 식당에 가니 식사는 어제 만찬 때처럼 또 코스식으로 나왔다. 8시 경 로비에 집합하여 남포와 원산 근교 안변으로 가는 두 팀 중 후자에 끼어 원산행 버스에 올랐다.

이른 아침 평양거리(고려호텔 앞) photo 김재민
이른 아침 평양거리(고려호텔 앞) photo 김재민

하루를 자고나서 그런지 바깥 풍광이 훨씬 익숙하게 여겨졌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다 첫날의 설렘과는 달리 안정감을 회복한 듯했다. 버스는 20분 정도 시내를 관통하다 곧 교외길로 들어섰다. 총 길이 172km1972년 착공하여 1978년에 완공했다는 평양-원산 간 4차선 고속도로는 콘크리트 포장로였다.

웅장한 산세 속 평양-원산 고속도로(여름) photo 김재민
웅장한 산세 속 평양-원산 고속도로(여름) photo 김재민
원산 가는 길에 본 을씨년스러운 산등성이(겨울) photo 김재민
원산 가는 길에 본 을씨년스러운 산등성이(겨울) photo 김재민

접합 이음매가 매끄럽지 못한 데다 전날 내린 눈이 도로 곳곳에 쌓여 시속 70킬로 이상 내기가 어려웠다. 차창에 비치는 산하는 녹화사업이 부족해 그런지 머리를 짧게 깎은 것처럼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산세는 황석영이 소설 '장길산'에서 묘사한 대로 확실히 남녘보다 선이 굵고 세차 보였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은 거의 없기에 운전기사는 응달진 곳에 눈이 미처 녹지 않은 구간에서는 미끄러지는 일이 없도록 좌측통행을 일삼았다. 배낭을 등 뒤에 매고 간간이 길을 가는 주민들은 대부분이 도보였다. 정기 노선버스 같은 것은 아예 없는 듯 했다.

고속도로 위를 지나가는 북한주민들(여름) photo 김재민
고속도로 위를 지나가는 북한주민들(여름) photo 김재민

공기와 하늘은 더없이 맑아 총총걸음으로 대오를 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이 남쪽에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추구하는 웰빙 걷기운동 효과를 무료로 누리는 것 같다고 뜬금없이 좋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6, 70년대 남쪽의 시골 오지에서나 볼 수 있던 낙후된 교통수단 인프라가 그대로 엿보여 안쓰러운 마음을 가는 내내 떨칠 수가 없었다.

 

어쩌다 눈에 띄어 벌판에 방목되어 있는 소들도 먹을 풀이 충분하지 못한지 남쪽 소에 비해 덩치가 2/3 정도 밖에 안 되었다. 털도 윤기 나는 누런색이 아니라 푸석푸석한 황색과 흑갈색의 조악한 잡탕처럼 보였다. 예전에 서구쪽 소, 돼지, , 하다못해 닭조차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덩치도 커고 때깔이 좋아 보이던 현상이 그대로 반영되는 듯해 참 마음이 묘했다.

 

얼른 이곳에도 비인간적이라 욕을 먹는 자본주의 생산성 개념일지언정 일부라도 도입되어 물질의 만성 부족을 완화하여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게끔 남쪽 기업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평호수를 배경으로 photo 김재민
신평호수를 배경으로 photo 김재민
평양-원산 고속도로 전체 노선 photo 김재민
평양-원산 고속도로 전체 노선 photo 김재민

평양에서 남동쪽으로 비스듬히 내려가 황해북도의 상원, 연산, 곡산을 거쳐 유일한 휴게소인 신평호에서 20분간 정차해 기념 촬영을 했다. 처음에 남쪽에서 지도 보며 생각했던 평양에서 동북쪽으로 원산까지 직행하는 최단거리의 고속로 코스가 아니었다. 험한 산세와 경유 지역의 개발 필요성 때문인지 '평양에서 남동쪽으로 비스듬히 남하->황해도 중간에서 북동쪽으로 비스듬히 동진->원산'에 다다르는 우회코스였다.

 

버스가 출발한 뒤 얼마 안 있어 강원도 도계 표지판이 나타났다. 수안, 법동 등을 지나며 한 2시간여 북행하니 명사십리로 예전부터 유명한 원산 입구에 도달했다. 오면서 헤아려 보니 총 13곳의 터널을 지났는데 굴 안은 헤드라이트에 비춰지는 희미한 야광 도로표식만 있을 뿐 아무런 라이트 시설도 없는 그야말로 암흑천지 일색이었다. 시계를 보니 정오가 다 되었다.

원산 입구 photo 김재민
원산 입구 photo 김재민

남쪽에서 원산폭격이란 말로 잘 알려져 있는 원산은 6·25 때 미 공군으로부터 대규모 맹폭을 당해 거의 초토화되었다 하였다. 휴전 후 북측에서 평양, 개성, 함흥, 신의주, 원산 5대 지역거점 도시들을 국가경제적 차원에서 집중 재건하여 함흥과 함께 동북지역의 대표적 공업중심지로 육성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경관 좋고 공업화도 비교적 잘되었다는 원산 시내로 들어서니 평양과는 사뭇 다른 낙후된 지방도시 면모가 한 눈에 다가왔다. 중심가에 있는 시설물과 주민들의 입성도 평양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명색이 북한 5대 도시 중 한 곳인데 어찌 이 정도밖에 되지 않나 약간 놀랄 정도였다.

송도원 려관 601호 photo 김재민
송도원 려관 601호 photo 김재민

우리가 하루 밤을 묵을 송도원 려관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고려호텔과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북쪽 숙박시설의 여러 열악한 환경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낡아빠진 엘리베이터나 화장실 시설, 대낮에도 복도에 불을 켜지 못해 복도 끝 사람을 식별하지 못할 정도로 어두컴컴했고, 난방이 제대로 안 되어 차가운 냉기가 건물 곳곳에 음습해 있었다.

 

아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에너지와 전기 공급이 어려운 경제사정이라 해도 1급 숙박업소가 이 정도라면 일반 가정은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거라 넉넉히 짐작되었다.

대우, 삼성 사람들과 송도원 려관 앞에서 photo 김재민
대우, 삼성 사람들과 송도원 려관 앞에서 photo 김재민
푸른 원산 바다 photo 김재민
푸른 원산 바다 photo 김재민

점심식사를 하러 2층 식당에 갔다. 연분홍색의 얇은 한복을 입은 도우미 여성들은 냉기에 단련된듯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코스식 음식들을 부지런히 내어 왔다. 예전부터 명태잡이로 유명한 지역이라 명태조림과 함께 광어 등 어물들이 주메뉴였고, 군고구마가 코스 앞쪽에 나와 이곳에서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먹거리로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점심을 마친 후 북한 방문의 주목적인 안변 상음리와 월랑리 지역의 조선소 건립 후보지 시찰을 하러 갔다. 50여 분 버스로 남행하니 목적지인 안변 해변이 나타났다. 맨 처음에 본 상음 연동 지역은 파고가 낮고 배후지 활용도가 그럴 듯 했지만 바람이 세고 전면이 탁 틔어 고비용이 예상되는 방파제 건설이 불가피했다.

상음리 연동 해변 전경 photo 김재민
상음리 연동 해변 전경 photo 김재민
상음리 합진 늪지대 photo 김재민
상음리 합진 늪지대 photo 김재민
월랑리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 photo 김재민
월랑리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 photo 김재민

두 번째 상음 합진 쪽은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호수를 낀 내륙 지역이라 바람은 약했지만 방파제 건립을 해야 했으며, 늪지여서 매립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마지막 월랑리 쪽은 담수 확보가 용이하고, 준설토양 활용성이 엿보여 앞의 두 곳보다는 나았지만 남쪽 시찰단을 매료시킬 만한 빼어난 입지 수준은 아니었다. 세 곳 모두 진출기업에게 막대한 초기 인프라 건설비용을 추가로 요구하는 입지조건들을 품고 있었다.

 

일행 대부분이 뭔가 미진한 마음을 품은 채 원산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점심과 비슷한 코스로 한 뒤 북측 안내원들과 회합을 가진 자리에서 보고 온 소감을 피력했다. 대우와 삼성 측 사람들은 나와 김 차장이 위에서 느낀 바와 비슷한 생각을 북측에 전했다. 북측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의 평가를 부지런히 받아 적으면서 입지결정을 너무 위험성과 수익창출적 관점에서만 보지 말아 달라 주문했다.

 

남북경협 합의 정신에 의거해 초기 입지조건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남측이 대승적으로 먼저 진출해 주면 북측은 필요한 토지와 인력 제공을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는 사실을 크게 강조하였다.

 

인프라 및 설비투자의 대규모성과 그에 따르는 위험요인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 민족적 차원에서 큰 맘 먹고 여러 처녀지들을 공개했음에도 남쪽기업들은 사업성만 야박하게 따진다고 도리어 면박 주는 식이었다. 아무리 시장경제에 대한 감각이 무디다 해도 더 이상 논의를 진행시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여길 정도로 서로의 인식 간극은 참으로 컸다.

 

원산에서의 첫밤을 그럭저럭 보낸 뒤 아침 6시에 기상했을 때 화장실 변기에 물이 내려지지 않아 각 실마다 온통 난리였다. 온수는커녕 냉수조차 7시 전까지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겨우 시간이 되어 수돗물이 나오긴 하는데 이번에는 뻘건 녹물이 쏟아져 나와 모두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북쪽의 전력과 용수공급이 열악하다 들었지만 실제로 체험해 보니 갑자기 문명사회에서 절연된 느낌이었다.

 

전날 저녁 남측 반응이 시원치 않다 여겼는지 북측은 다음 날 이미 합의했던 원산항과 원산조선소 견학 일정에서 원산항 방문은 취소되었다는 평양 상부의 결정을 통보했다. 할 수 없이 조선소만 구경하게 되었는데 들어서는 순간 설비의 낡아빠짐과 작업방식의 낙후성에 또 아찔했다.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라니 하는 생각이 남측 일행들에 금방 퍼져 나갔다.

원산 조선소 구 소련제 크레인 photo 김재민
원산 조선소 구 소련제 크레인 photo 김재민
개보수가 안 된 녹슨 크레인 photo 김재민
개보수가 안 된 녹슨 크레인 photo 김재민
그라인딩 하기 전의 신조 선체 photo 김재민
그라인딩 하기 전의 신조 선체 photo 김재민

자기들 말로는 약 20만평 부지에 2000여 명의 생산인력이 최대 12000톤급 선박까지 건조하고, 인도네시아와 이란 등지에서 소형선 건조 주문이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했다. 하지만 용접, 도장, 설계, 인력양성 부문에서 낙후되었음을 스스로도 시인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남쪽의 60년대 상황과 흡사해 당분간은 신조선 건조가 아닌 선박블록 생산입지로서도 활용할 여건이 아니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평양행 귀로에 올랐는데 이번에도 길가에 퍼진 트럭들과 망태 메고 먼 길 걸어가는 주민들을 보니 애잔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 통일비용을 쏟아 부어야 북쪽 인프라 수준이 남쪽 반이라도 따라올까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통독 후 10년 만에 유럽의 병자라 불릴 정도로 독일경제를 허우적거리게 했던 밑 빠진 독 물 붓기식 사회적 비용을 강요한 동독지역 인프라 개축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새나왔다.

 

평양 시내에 들어서자 눈에 띄는 과시적인 대형 건축물과 넓은 도로폭이 정말 허장성세처럼 보였다. 지방 도시들은 캄보디아만큼도 안 되게 낙후 속에 내팽개쳐 놓고 수도권에만 이렇게 낭비적인 건설 쇼를 지속적으로 하는 체제가 더 이상 오래가서는 결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고려호텔에 도착하자 무슨 허구의 세계에 다시 진입하여 집단기만의 분위기 조성에 지각이 마비된 듯한 역할을 한다는 자괴적 심정이 마음 저 깊은 구석에서 또아리를 틀었다.

우리가 묵은 방과 비슷한 고려호텔 룸 내부 photo 김재민
우리가 묵은 방과 비슷한 고려호텔 룸 내부 photo 김재민

방에 들어가 샤워하고 나오니 저녁 8시에 북측과 마지막 회합이 있다는 전갈이 왔다. 회의 후에는 남쪽 정부 사람들이 44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답례 만찬을 주최한다고 했다. 회합에서는 그 전날 했던 얘기들이 확인차 되풀이 되었고, 기존 견해 차이에 대한 특별한 간극 줄임은 없었다.

 

1시간 조금 넘게 진행되다 남북 협력정신에 의거해 계속 잘하자는 양쪽 대표들의 세리머니적 덕담성 멘트들이 교환된 뒤 참석자들은 모두 만찬장으로 올라갔다. 1815년 나폴레옹의 폐위 후 유럽질서를 재편하는 빈 회담에 대해 후세 역사학자들이 한 마디로 표현한 '회의는 춤춘다'는 풍자적 문구가 하필 그때 뇌리에 딱 떠올랐다.

 

스카이라운지는 층 전체가 360도 회전식이었다. 거참 경제적 어려움에도 북쪽 사람들이 외빈을 위해 할 것은 다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S자 형태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 한 쪽 끝에 자리 잡은 김 차장과 나는 주위 업체 사람들과 방문 소감들을 나누며 이쪽저쪽에서 권하는 양주를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셨다.

 

취기가 슬슬 오르려고 하는데 순안공항 도착 시 남측 사람들을 맞았던 대표 안내원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 앞에 앉았다. 같이 기념사진 찍고 하면서 분위기가 좀 풀어진 틈에 성명과 무슨 일을 담당하느냐고 물었다.

대각선 맞은편 계 선생과 송별연 자리에서 photo 김재민
대각선 맞은편 계 선생과 송별연 자리에서 photo 김재민

계 아무개라고 이름을 소개한, 이목구비가 똑부러지게 생긴 젊은 안내원은 민족경제협력연맹에서 실무 일꾼으로 근무한다고 했다. 가족과 나이, 학부 전공에 대해 물으니 딸 하나 두고 있는 30대 후반의 기혼자이며, 20대에는 김일성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밝혀 주었다.

 

답례로 나도 독일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해서도 상당히 관심 깊게 접해봤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이 젊은 친구가 반색을 하며 다가서기에 시장경제에 대해서도 공부 좀 해봤냐고 물었더니 이제 열심히 알려 한다고 답했다.

 

내친 김에 북쪽이 조선산업을 제대로 하고 싶거든 중국 이외에 베트남과 쿠바의 개방책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라 권고했다. 특히 베트남 정부의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살펴본다면 북쪽에서 당장 써먹을 만한 정책방향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거라 덧붙였다.

 

연결해서 북쪽에도 계 선생 같은 젊은 엘리트들이 많이 양성되어 세계를 향한 실용주의적 정책들을 윗선에 많이 올리고, 앞장서 실천하면 향후 10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분을 북돋워 주었다.

 

이 양반이 어느 정도 고무되었는지 만찬을 마치고 나와 사람들과 하강 엘리베이터로 가는 나를 보더니 상당히 경청할 만한 말씀 많이 해주셨다며 따로 목례를 건너는 게 아닌가? 제발 이런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를 떠나 북쪽의 개방노선에 일익을 하는 시기가 무르익었으면 하는 바람이 진심으로 일었다.

고려호텔 지하 바 노래방 photo 김재민
고려호텔 지하 바 노래방 photo 김재민

평양의 마지막 밤을 지하 바에 내려가 김 차장, 대우 일행들과 함께 양주 한 잔 하며 보냈다. 노래방 기기도 있지만 유행하는 남측 노래들은 별로 없어 수록되어 있는 팝송을 찾아 부르며 기분을 내었다. 일정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모처럼 만취한 김 차장을 부축해 방에 들어오니 밤 1시가 넘어 있었다. 침대에 누우니 바로 숙면으로 빠져 들어갔다.

 

베이징에서 하루 머문 것을 포함한 45일 간의 북한 탐방은 정말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지만 말미에는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언젠가는 정상적인 국가로서 발돋움할 때가 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들었다. 똑같은 감정과 인간미를 가진 북측의 형제자매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체제가 언제까지나 인간의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진보에 대한 내적 욕구를 억누를 수는 없기에 언뜻언뜻 대화를 하면서도 이들에게서 숨어 있는 비상(飛上)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크고 작은 경제협력을 통해 북쪽 동포들과 자주 교류하여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공감대를 확인하는 것이 통일 후 남북의 화학적 결합기간을 줄이는 급선무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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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자 19.01.14 18:09

첫댓글 참으로 리얼하고 정갈한 기행문...12년이 지났지만 북은 아직도 변해지 않았을거니 남북협력비용이 엄청나겠네. 글고, 내가 다음주부터 아주경제에 "스포츠으로 경제보기"라는 칼럼을 매주 연재할건데, 스포츠야 잘 알지만 경제지식은 부족해, 자주 문의할테니 김박의 이멜 주소 좀 올려주셔~

 

김재민 작성자 19.01.15 08:42

대기자, 요즘 형편이 많이 빡세어진 모양인데, 너무 고개 숙이고 살지 마소. 저널들에 다양한 컬럼들 쓸 필력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노년에 얼마나 든든한기요? 싸모께서 반대하더라도 택시운짱 한번 하고 싶거든 내질러버리시구려. 보니 준비도 많이 되어 있더만요.

 

나도 25년 전 함부르크 택시운짱 시절이 한번씩 떠올라 언젠가는 한국 땅에서도 더하고 싶은 소망을 품고 있소이다. 물론 진상들 태워 스트레스 잇빠이 받을 수도 있지만, 흥미로운 손님들과 노가리 풀며 이런저런 생생한 글감들도 많이 챙길 수 있을금다.

 

경제컬럼을 쓴다하니 나도 호기심이 많이 돋는구려. 소생이 많이 알지는 못하나 corazon27@naver.com으로 연락주소

 

마닐라공 19.01.14 18:20

그때나 지금이나 인민들 생활은 평양을 제외하고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개성공단은 그냥 두고 우리 지역에 공단을 건설하여 북쪽 근로자들이 별도 통로를 통해서 출퇴근 하도록 해야 합니다. 칼날을 잡는 어리석은 짓을 하면 안됩니다. 마카오에 대학 부지가 모자라자 주하이 시에 대학을 세우고 교직원들은 별도 통로로 출퇴근 등하교를 합니다. 머리를 목에만 이고 다니지 말고 머리를 좀 써야 하는데...

 

김재민 작성자 19.01.15 10:01

마닐라공은 여지껏 북한 땅 한번 밟아 봤능교? 안그랬다면 기회될 때 꼭 다녀오시구려. 나를 비롯한 동기들이 마공 눈으로 본 인상기를 많이 기다릴 것임다.

 

나는 개성은 물론이고, 해주+남포, 원산, 나진, 신의주 등에도 남쪽기업들이 진출해 산업공단 교두보를 만든 뒤 중국, 일본, 유럽국 및 제3세계 기업들도 합작형식으로 끌여들인다면 꼭 칼날 잡는 상황만은 아닐거라 여김다.

 

현지에 들어가 현지인과 부대끼며 시장을 개척해야 지속적인 시장기회 및 북한당국에 대한 역영향력도 생길 것이라 생각되네요.

 

마닐라공19.01.15 10:29

@김재민 이북에 안 가도 갈 곳이 많습니다.

안 그래도 없는 내 돈을 정은이를 위해서 쓰고 싶지 않습니다...

 

서토19.01.15 19:59

@마닐라공 정은이를 위해 가보시라 하는 게 아니고.. 마공께 행여 덕이 되는 일이 있을까..

마공 당신을 위해 가 보시라는 따듯한 권유임을 재삼 통촉해 주시옵기 바람미다.

 

행여라도 이로 인해 정은이에게 덕이 되어버린 사항이 생긴다면.. 서토가 다시 적극

몰수해 오도록 하겠음을 확약드림미다.^^

 

법사19.01.15 07:37

예전에 봤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북한이 이런 상태로 남아 있다면 시간을 건너뛰어 개발을 희생 시킨 값비싼 보호구역으로 간주하여 이왕 이리 된 것, 6.70년대 한국처럼 조급하게 마구잡이로 섣불리 파헤치지 말고 차분히 원대한 계획으로 발전시키도록 남북이 지혜를 모아야겠지요. 아무튼 좋은 기록물입니다.

 

김재민 작성자 19.01.15 09:40, 법사도 예전에 이 글 읽어봤는갑네요. 나는 북미 거주 동기들은 서토말고는 우리 옛 홈피에 접근하지 못하는 줄 알았심다. 아무튼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법사의 탁견을 계속 기대하외다.

 

서토19.01.15 06:18

당시에 의미있게 읽어본 내용인데.. 여전히 자신의 기록물들을 잘 관리보관하고 계신 김박사의 성의가 돋보입니다.

 

수년전 현대중공업에서 만났을 때 김박사가 당시를 회상하며.. 북측이, 수익성/사업성 여부에만 너무 연관시키지 말고.. 남북경협의 대승적 차원에서 본 사업을 고려해달라고 부탁하더라는 이야기가

지금껏 늘 저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그만큼.. 남북끼리의 자주적 분단상황 개선 도모에 힘을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박사 언급대로.. 그런 마음이 서로 쉬이 통해질 수 없는 간격의 벽 양쪽에 남북이 놓여있다는 마음에.. 이후에도 늘 가슴이 아립디다.

 

김재민 작성자 19.01.15 09:11

서토는 내가 본인만큼 북빠가 아님을 섭섭하게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소시적부터 북녘 땅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심다. 초딩과 중고교 시절에도 언론과 방송에서 북한을 멍텅구리 집단들이 사는 쪼다 지역으로 묘사하는 것만 보고 들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이렇게 오랜 세월 한미 동맹측에 뻣뻣하게 대치할 수 있는 군사력을 키우는 것을 보면 뭔가 한가락이 있을거라는 합리적 의문을 품었네요.

 

지난 10 여년 사이 금강산(2003)과 평양+원산 지역(2007)을 두 차례나 다녀왔더니 사람들은 우리와 거의 같다는 확인을 확실히 했심다. 퍼주는 게 아니라 거둬들이기 위한 씨뿌리는 투자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금도 믿네요.

 

서토19.01.15 06:19

특히 방문기 말미부분의 언급 사항은.. 작금 상황의 도래를 일찌기 예측한 김박사의 번뜩이는

예지였다 평가되네요.

 

김박사가 대화 중 그들에게 던져준 조언도.. 아마 당시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당시 북쪽의 일꾼들은.. 왠지는 몰라도 자본주의 경제와 연관한 용어나 학설에 대해 상당히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기억됩니다.

 

분단상황 개선, 즉 통일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과 열정이 그때도 이미 크게 내보여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삼신할매(?) 거처의 깃대가 이후 어느쪽으로 공고히 기울어질지..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김재민 작성자 19.01.15 10:03

우리 조선협력단이 방문했던 2007년 말만 하더라도 한국 조선업의 활황이 사상 최고조에 달했을 때니 븍한 해주나 원산 같은 조선소 인프라 불모지에 대규모 투자로 진출해 특별한 사업기회를 창출할 동기는 거의 0으로 봐도 좋을거라 우리 사람들은 봤을테지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때와는 판이해져, 우리 남쪽 조선업계의 잉여 설비와 퇴직 및 구조조정 당한 유휴인력들이 넘치고 있으니 그 때 봐 둔 이 지역들에 진출할 수만 있다면 바로 달려가게 되었다고 여겨짐다.

 

그 때 계선생 같은 아재에게 내가 작성해 갖고간 '베트남 조선업계 현황과 그 시사점'이라는 파워포인트 보고서의 핵심내용들을 구두로 전해 주었는데 이 양반들이 잘 이해해 야무지게 써먹었으면 하네요.

 

김재민 작성자 19.01.16 09:41

@김재민 그리고 서토는 지난 번에 보낸 영화-국가부도의 날은 잘 챙겨 봤능교? 이번에는 영화-완벽한 타인을 보낼테니 거기 사람들과 편안하게 감상하소.

 

지박사19.01.15 08:49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좋은 경험을 한 김박이 부럽슴다.

 

또 한가지 더 백문이 불여일견인 것은

김박이 초입에 언급한 김박의 촘촘한 머리에 세월에 관한 것이요.

 

마치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 처럼 풋풋한 김박의 젊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좋은 DNA를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듯..

 

김재민 19.01.15 09:44

전세계 안가본 데가 없는 지박사에게 북한 땅은 마지막 몇 안남은 미지의 여행지일 것 같구려. 이번에 뭔가 한번 더 교류의 장이 펼쳐지면 꼭 1빠로 다녀 오소. 그리고 저 위의 마닐라공과 함께 멋들어진 기행문 하나 남겨 주고요.

 

원산 송도관 여관에서 하루 밤 머물 때 수더분한 인상의 조바상 아줌마가 복도에서 나를 보고는 방까지 찾아와 커다란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담아 전해 주길래 답례로 5불을 주었지요. 참말로 고마와 합디다. 아침에 화장실 물이 안나왔을 때 우리 방은 아주 요긴하게 잘 써먹었심다.

 

내가 이때도 50 중반으로 가며 나도 모르게 머리숱이 슬슬 빠졌을텐데 풋풋하다니 암만 짜고 치지만 빠다빨이 심하외다.

 

지박사19.01.16 13:10

김박 왜 내가 안가본데 없다고 생각하요? 난 진짜 엘에이 촌놈이요..묵고 산다꼬 동네 근처에만 깔작이고 멕시코도 못 가봤소. 하여 올 초여름엔 10여년 만에 큰맘묵고 지중해를 함 가볼까 희망하고 있습미다만...(강아지도 이젠 없고 하니..ㅠㅠ)

 

글고 김박 머리는 빠졌다고 하지만 진짜 빠진 사람들이 들으면 욕함미다..

 

백교장19.01.15 10:28

한번 읽어본 글을 다시 보니 새삼 재민박사의 필력을 느낍니다.

서토도 북한을 방문한적이 있지요?

난 금강산은. 간적이 있는데 영어로 씌인 옷도 못입게 한게

생각납니다.

 

마닐라공19.01.15 10:31

금강산 같은 곳에 가지 말고 울릉도나 다녀오세요...

 

김대기자19.01.15 14:25

나도 스포츠 조선 야구부장일때 현대그룹의 배려로 1998년 가을에 동부인해서 금강산 간적 있음. 잠을 조그만 항구에 대놓은 배에서 잤는데 밤새 파도로 침대 울렁거려 둘이서 꼭 껴안고 자는둥 마는둥한게 기억남^^

 

김재민19.01.16 09:32

@대기자는 나보다 훨씬 일찍 금강산에 다녀왔구료. 나도 중공업 들어간 덕으로 2000년대 초 여기 사람들과 포상격려 방문단에 끼어 갔다 왔는데 우리도 현대아산측에서 정박시켜 놓은 선상호텔 같은 데서 묵었심다.

 

대기자 때보다는 배가 컸는지 그리 울렁거릴 정도로 요동치지는 않습디다. 방마다 KBS 등 국내 TV방송 시청이 가능했고, 자그마한 바도 있어 들어가니 러시아 도우미가 대화도 거들고 노래와 춤도 추며 서빙해 주데요.

 

김재민 19.01.16 09:37

백교장도 금강산 초기 방문단으로 갔다 온 모양이구려. 좀 후발로 간 우리 때는 검문소 통과 때 쪼다 같은 군인 놈이 올라와 꼴쳐보며 인상 쓴 것 외에는 다른 북한 접대원들은 많이 익숙해져 아주 살갑게 남쪽 손님들을 대해 줍디다.

김재민 작가·경영 컨설턴트 photo 김재민
김재민 작가·경영 컨설턴트 photo 김재민

<필자 소개> 김재민은 한국외대 독일어과, 연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온 뒤 산업경제연구원에 근무하다 도독(渡獨)하여 함부르크대와 함부르크 국방대에서 경영학 디플롬과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경영학 분야에서는 글로벌경영, 전략경영, 마케팅, 창업경영, 인문경영 분야를 주력으로 연구하고 강의했다. 이 과정을 현대경제연구원, 현대중공업, 부산 경성대에서 근무하며 수행하다 2020년 퇴임 이후에는 본격적인 프리랜서 글쓰기 작가와 스타트업 기업들의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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