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조선 침략을 비판한 소신파, 요절한 천재 시인!
시인 백석이 그의 이름 맨 앞자를 따 필명을 만들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에게 바친 헌시도...

권위 있는 아사히 신문이 일본 최고의 시인으로 꼽았다.

 

그것도 20세기 따위가 아니다. 1000년간 통틀어 최고...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 1886~1912).

이시카와 다쿠보쿠 photo 나무위키
이시카와 다쿠보쿠 photo 나무위키

우리의 천재 시인 백석이 그를 흠모해 필명의 한자 ''을 따왔을 정도다.

 

다쿠보쿠가 남긴 평론들 역시 치열한 정치의식과 산문정신의 불꽃을 내뿜는다.

 

필명인 타쿠보쿠(啄木)'나무를 쪼다'라는 뜻이니.

 

봄날에 높은 나무에 숨어 구멍을 파는 딱따구리새다.

 

26세로 요절했다. 그러지 않으면 천재 행세를 못하니...

 

짧은 생애, 치명적 향수와 도회인의 고단하고 슬픈 서정, 삶의 회한과 페이소스를 시에 녹여 심금을 울렸다.

 

그는 메이지 때 대표 문학가이자 국민 시인으로 꼽힌다.

 

일제의 조선 침략에 비판적인 반제국주의자로 우뚝했다.

 

1886220이와테현 조코 절의 주지 스님 맏이로 태어났다.

 

모리오카 중학에서 평생의 벗 언어학자 긴다이치 교스케를 만난다.

 

학교를 중퇴하고 기자가 돼 홋카이도를 떠돌아다닌다.

 

그 후 도쿄로 상경아사히 신문에서 교정 일을 한다.

 

낭비벽이 심해 빚을 많이 져 경제적으로는 불우했다.

 

1912413, 결핵성 복막염과 폐결핵으로 타계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20살 때 첫 시집을 발표했다.

 

천재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데뷔했지만 재운은 없었다.

 

상업적 실패 후 소설가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소설을 여러 편 썼지만 끝내 성공작은 내지 못했다.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소설이 아니라 단카였다.

'한 줌의 모래' 한국어판 표지 photo 네이버책
'한 줌의 모래' 한국어판 표지 photo 네이버책

생전에 나온 <한 줌의 모래(一握)>와 벗이자 언어학자인 도기 아이카가 편집해 그의 사후에 내놓은 <슬픈 장난감>, 단 두 권이다.

'슬픈 장난감' 한국어판 표지 photo 나무위키
'슬픈 장난감' 한국어판 표지 photo 나무위키

이 두 권 속 단카들이 그의 사후 시쳇말로 대박을 쳤다.

 

단카는 일본 고유의 시가문학으로 와카와 동일시됐다.

 

55·7·5·7·7조로 구성되는 정형시다.

 

하이쿠는 뒤의 7·7을 빼 만들어진 거다.

 

단카는 주로 귀족-상류층에서 즐긴 고급 취향 문학이다.

 

애호가만 좋아하고, 소수만 보는 폐쇄적인 문학 장르다

 

다쿠보쿠는 혁신적이라는 평가로 대성공을 거뒀다.

 

5·7·5·7·7조를 유지하되, 5행을 과감하게 3행으로 바꿨다.

 

형식의 자유는 취하되, 단카의 전통은 지켰기 때문이다.

 

또한 생활에서 느끼는 피부에 와 닿는 솔직한 감성들로...

 

고답적이고 형태주의에 빠진 기존의 단카와 차별화에 성공했다.

 

일종의 민중예술, 민초의 마음을 사로잡는 단카였다.

 

<한 줌의 모래> 단카들은 소재가 참으로 다채롭다.

 

500수가 넘는 작품들의 소재는 복잡다단하다.

 

자살하러 간 바닷가에서 시상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도시인의 고독과 돈벌이의 고단함, 고향을 그리워하고, 계절이 바뀔 때의 감회, 홋카이도 유랑 추억, 문학에 대한 애착과 회한,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얘기, 죽은 아들을 그리는 슬픔 등.

 

삶의 고단함과 비극성을 몸으로 체화하듯 그려낸다.

 

그의 시작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세련되게 구현된다.

 

사후에 나온 유고 <슬픈 장난감>은 거칠고 어둡다.

병으로 죽어가는 소회를 솔직하게 담담하게 다룬다.

 

그래서 생전의 단카에 비해 단선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편집을 평생의 벗이 맡아 했지만 고친 게 거의 없다.

 

그러니 다쿠보쿠의 유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20세기 초, 단카-하이쿠 열풍이 일본에 거세게 불었다.

 

나무를 쪼듯 언어를 탁마한 다쿠보쿠가 그 중심이었다.

 

그의 문학적 영향력은 후대 시인들에게 강력했다.

 

이후 리얼리즘·프롤레타리아 문학에도 영향이 컸다.

 

뼈저린 향수와 노마적 유랑, 도회의 삶은 피부에 닿는 단골 소재들.

 

그 일상성을, 그 몸에 와 닿는 느낌과 서정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최고의 서정시인이요 국민시인이라고 불린 이유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실릴 정도.

 

좌파는 그의 이데올로기가 강조된 글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우파는 서정성 깊은 단카를 애정한다.

 

그의 대표작들을 보면 참 언어의 마술사가 따로 없다.

 

 

비탄하는 마음에, 말라붙은 영혼의 입술에,

 

물방울이 옥구슬 만드는 빛나는 샘물의 은혜,

 

향긋한 구름이 부는 성스러운 땅 푸른 꽃을

 

동경하여 쫓는 아이에게 하늘의 음악을 전하는

 

구제하는 주인이여, 가라앉은 종소리여.

 

아아 너, 존귀한 비밀의 뜻 따라 울리는가.

 

-<가라앉은 종>

 

 

희미하게 한밤중 감도는 종소리

 

생명은 깊숙한 환상, ~‘였노라.

 

야말로 진정 닿아도 닿기 힘든

 

흘러가는 환상. 그러니 사람들아 말하라,

 

시간에서 시간으로 흔적 없는 물거품이라고.

 

아아 그래, 물거품 한 번 떠오르면

 

시간이 있고, 시작이 있고, 또한 끝이 있는 법.

 

순식간에 사라졌구나. 어디로? 그건 모르지,

 

흔적 없는 흔적은 흘러서, 사람들은 모르지.

 

-<나였노라>

 

 

시름 있는 날이면, 무척 슬퍼서

 

고니가 우는 소리 참기 어려워,

 

물가에 있는 새장 문을 열어서

 

놓아주니, 서글퍼, 희고 어여쁜

 

연꽃 같은 배 가는 모습이라니,

 

날갯짓 조용하게, 가을 향기가

 

맑아져 구름 없는 푸른 하늘을,

 

보라, 빛이 뚜두둑 떨어지는 듯,

 

새하얀 그림자가 떠도는구나.

 

-<흰 고니>

 

 

푸른 바닷물 멀리 저기 남쪽의

 

바다에도 없었고, 백 년의 세월

 

오래된 꿈속에도 없었던 것을,

 

어찌하여, 드높은 저편 기슭의

 

들여다보기 힘든 동산과 같이,

 

소식도 전혀 없는 두 해 동안을

 

안개 핀 저편으로 숨겨두었나.

 

-<떨어진 빗>

 

일어를 아시는 독자제현을 위해서...

 

동쪽 바다의 조그만 섬 바닷가 백사장에서

東海小島白砂

 

나 울다 젖은 채로

われきぬれて

 

게와 어울려 노네

とたはむる

 

이유도 없이 기차에 타고 싶다 생각했을 뿐

となく汽車りたくひしのみ

 

기차를 내렸더니

汽車りしに

 

갈 수 있는 곳 없네

ゆくところなし

 

일을 하여도

はたらけど

 

일을 하여도 아직 나의 생활은 편해지지 않는구나

はたらけどわが生活楽にならざり

 

가만히 손을 본다

ぢつと

 

사람이라는 사람의 마음속에

といふのこころに

 

한 사람씩은 죄수가 들어 있어

一人づつ囚人がゐて

 

신음하는 서글픔

うめくかなしさ

 

눈을 감아도,

眼閉づれど

 

마음에 떠오르는 무엇도 없다.

にうかぶもなし

 

쓸쓸하게도, 다시, 눈을 뜨는 수밖에.

さびしくもまたをあけるかな

 

언제까지고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いつまでもいてゐねばならぬごとき

 

심정이 끓어오른,

 

깊은 밤 거리들.

深夜町町

 

 

그는 산문도 빼어나게 잘 쓴다. 문재를 타고난 천재다.

 

'어느 시골 소학교의 숙직실에서 뒹굴뒹굴하는 한 젊은 준 교원을 상상했다. 그 사람은 진정 사람을 화나게 할 만한 거친 말 따위는 마음속에 하나도 지니지 않은 사람이다. 그저 막연하게 교과서에 있는 만큼의 자구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막연하게 자기 처지의 가련함을 시인하며, 막연하게 앞으로 단카를 많이 짓겠노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일찍이 자기 마음속 혹은 신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그 뿌리가 얼마나 깊고, 그 미치는 바가 얼마나 먼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날마다 신문을 읽으면서도 우리 마음을 계속 바쁘게 만들고 날마다 새롭게 전개되는 이 시대의 진상에 대해 아무런 절실한 관심도 갖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이 인생에서 기분 좋게 입을 벌리고 웃을 기회가, 나의 그것보다 틀림없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유고 <슬픈 장난감>에 수록된 '단카에 관한 여러 가지' 중에서 발췌.

 

다쿠보쿠는 도쿄에 살 때 일기를 썼다.

 

이것이 그가 남긴 <로마자일기>.

 

일어 발음을 로마자로 옮겨 글을 작성한 것이다.

 

아내가 못 읽게 하려고 그랬을 거라는 추정도 있다..

 

단카에 서정성의 에스프리가 있다고 하면, 산문에는 치열한 정치의식과 예리한 평론가의 면모가 엿보인다.

 

일기 글에는 그의 기인적 자질, 데카당함이 드러난다.

 

'아내가 못 읽게 하려...'라는 게 이해가 갈 정도로 솔직한 내용이다.

 

마구 구르고, 막 나간 생활을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사쿠사에서 창기(娼妓)와 논 적나라한 경험까지 적혀 있다.

 

죽기 전에 일기를 태우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다.

 

정작 아내는 '남편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일기를 누군가에게 넘겼다.

 

그래서 일기까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다.

 

남긴 빚을 기록해 뒀는데 63명에게, 137250전을 빚졌다.

 

거칠게 환산하면 1400만 엔에 달하는 엄청난 거액이다.

 

꼼꼼하게 정리하고는 눈앞이 깜깜해졌을 법하다.

 

다쿠보쿠는 딸을 '소냐'라는 러시아 이름으로 불렀다.

 

러시아 황제를 암살한 무정부주의 소피아 페롭스카야의 별명에서 따왔다.

 

아내는 그가 죽은 지 1년 만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자식 셋도 모두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

 

1906년에 태어난 장녀 교코는 11녀를 낳고 24, 1910년에 태어난 장남 신이치는 생후 24일 만에, 1912년 그의 사후 약 2개월 만에 태어난 차녀 후사에는 19세에 병으로 모두 요절한다.

 

참 불행하게 살다간 비운의 천재 시인이다.

 

그는 사회주의적 성향이라선지 반제국주의자다.

 

지도 위 놓인 조선국 강토 위로

地図上朝鮮国

 

새카매지게 먹을 칠하며 

々とりつつ

 

가을바람 소리 듣네 

秋風をきく

 

누군가 나를

 

피스톨 가지고서 쏴 주지 않으려나

ピストルにてもてよかし

 

얼마 전 이토처럼 죽어 보여주련다

伊藤のごとくにてせなむ

 

 

-<9월 밤의 불평(九月不平)>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인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코코아 한 잔>

 

일제의 조선 침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시작을 했다.

 

젊은이들을 선동해 제국주의에 저항하게 만들려 했다.

 

이 단카는 일본과 동색인 조선 지도 위에 먹칠을 하며 지었다.

 

천황 암살을 모의하다 사형당한 고토쿠 슈스이의 대역 사건의 전개 과정을 지켜보며 분노한 글도 남겼다.

 

안중근 의사의 이또 히로부미 저격에 대해서도 '조선인을 미워해야 할 까닭을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다쿠보쿠는 안중근 의사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사소한 비판에도 목숨이 오락가락한 냉혹한 일제 시대인데도 그는 일본의 조선 침략을 내놓고 비판했다.

 

지식인으로, 문학인으로서 시작이나 산문으로 속죄를 꿈꿨으리라.

 

일본 지식인 문학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만 총총(계속)

 

#뱀발...박석근의 글(자유일보)

 

 

철새

 

가을 저녁의 조용함을 휘저어놓고

 

하늘 저 멀리 구슬픈 소리가 건너간다

 

대장간의 백치 아이가

 

재빨리 그 소리를 알아듣고는

 

저물어가는 하늘을 쳐다보며

 

새가 나는 흉내를 내면서

 

그 주위를 빙빙 돌아다닌다

 

까악~ 까악~ 외쳐대면서

 

<이시카와 다쿠보쿠>

 

 일본문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나라를 침략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들은 대부분 반일감정을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단순한 감정이다. 안타깝게도 대중은 언제나 감정을 앞세워 역사를 읽는다. 그래서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위험성은 늘 우리 곁에 상존한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아사히신문이 선정한 지난 1000년 간 최고문인이다. 26년의 짧은 생애 동안 고향을 향한 그리움,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애환과 서정이 담긴 작품을 남겼다.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문학가인 동시에 국민시인으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그는 일제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화에 대해 비판한 반 제국주의자였다.

 

그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 나누기 어려운/

 

단 하나의 그 마음을/

 

빼앗긴 말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려는 심정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적에게 내던지는 심정을/

 

그것은 성실하고 열심인 사람이 늘 갖는 슬픔인 것을"

 

정부 비판을 금기시하는 제국주의 냉혹한 시대임에 그는 목숨을 걸고 시를 썼다. 시인 백석은 이시카와 다쿠보쿠를 흠모하여 그의 이름 중 을 따와 필명으로 사용했다.

 

철새들이 수만 리 고된 비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땅에 대한 희망 때문일 터이다. 감각과 본능에 의지해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땅을 찾아간다. 철새들이 대오를 지은 채 비행하는 것은 날갯짓이 만드는 상승기류가 서로에게 힘을 보태기 때문이다.

 

가을날 철새들이 저녁의 조용함을 휘저어놓고/ 하늘 저 멀리 구슬픈 소리가 건너간다. 저물어가는 가을 하늘에 떠나가는 철새의 풍경은 구슬프다. 그런데 대장간의 백치 아이는 그렇지 않다. ‘저물어가는 하늘을 쳐다보며 새가 나는 흉내를 내고 까악까악 외쳐대면서 그 주위를 빙빙 돌아다닌다’. 그 아이는 철새들이 떠나가는 광경이 오히려 기쁘다. 이 순진무구한 영혼은 보통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감정을 가졌다. 보통사람에게는 날개가 없지만 이 아이에게는 날개가 있다. 그래서 땅에서 새처럼 날 수 있는 것이다.

필자 최영훈 자유일보 주필 photo 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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