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함을 예고하는 1968>

 

경남중 1년의 시간을 보내고 2학년이 되기 위한 첫 겨울방학을 맞았다. 크리스마스와 신정을 보내며 영화관 순례와 과외 학습장에 다니던 일상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1월 중순을 지나면서 커다란 사건들이 막 터지는 것이었다.

 

1. 1·21 무장공비 침투 사건

 

북한의 정찰총국이 대규모 무장공작원 30여 명을 서울에 침투시켜 청와대 기습으로 박통을 암살하려던 ‘1·21 무장공작원 침투사건이 그 첫 스타트였다.

 

신문과 TV 방송에서는 연일 이 뉴스 보도로만 도배질을 했다. 휴전선의 파주 침투로를 통해 거침없이 북악산까지 진출한 공비부대는 이틀 후 청와대 외곽 경비소인 자하문 파출소에서야 첫 제지를 받고 교전 후 각개 도주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매스컴들은 토끼몰이식으로 이들을 쫓던 군경추격대가 오늘은 몇 명 사살 성과, 총 몇 명 누적사살 전과하는 식의 발표문을 사살 시체들과 함께 매일 보여줬다.

1·21 침투조에서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 photo 김재민
1·21 침투조에서 유일하게 생포된 김신조 photo 김재민

 

그러던 중 김신조가 체포되어 방송에 나와 우리는 박정희 목 따러 왔수다하는 회견 내용을 듣고, ‘, 저놈 흉악한 적이지만 간뎅이는 엔간히 크네. 어쩌다가 안 죽고 저리 사로잡혔을꼬.. 안됐지만 조만간 죽을 목숨이제..’ 하며 묘한 양가적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이 아재는 그 후 한국에서 직업적인 반공강연 강사가 되어 3,000번이나 돌려졌어도 꿋꿋하게 버티며 나중에는 개신교 목사가 되어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2.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무장공비 침투가 벌어진 121일 이틀 후에 미해군의 정찰선 푸에블로호가 일본 규슈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톡 해상에서 대소련 정보수집을 하다가 원산 쪽으로 옮겨 공해상을 들락거리던 중 북한 초계정 3척과 미그기 2대에 의해 나포되어 원산으로 끌려갔던 사건이다.

푸에블로호(67/10) photo 김재민
푸에블로호(67/10) photo 김재민

 

이 사건이 무장공비 추적전 중에 한국신문들에 또 대문짝만하게 터지자 , 이러다 제26·25가 또 벌어지는 것 아니가? 북괴놈들은 왜 저리 간뎅이도 크고 공격적이제.. 미국놈들 코털 제대로 잡아당기네..’ 하고 사건 전개에 흥미진진해 했다. 다른 한편 만화나 영화에서 북한군은 한국군 밥이던데 실제로는 안 그렇는갑네 하고 약간 의아함이 품어지며 한국과 미국이 요로콤 당하는 데 대한 부아가 치솟기도 했다.

대동강에 전시된 푸에블로호(09/05) photo 김재민
대동강에 전시된 푸에블로호(09/05) photo 김재민

 

사건 초기에 미국은 당시 매체에 하도 보도되어 지금도 기억나는 핵항모 엔터프라이즈호와 호위 구축함들을 원산 앞바다로 이동시켜 당장이라도 폭격에 들어갈 것처럼 무력과시를 했지만 북한은 꿈쩍도 하지 않는 듯했다. 마치 역사에서 배웠던, 구한말(1866) 대동강까지 들어가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던 미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평양군민의 저항 속에 선체가 소각되고 미선원들이 처형되었다던 그 사건처럼 말이다.

억류된 푸에블로호 승조원 photo 김재민
억류된 푸에블로호 승조원 photo 김재민

 

당시 미 존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에 막 휩싸여가던 시기라 한반도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수행할 입장이 못됨을 간파한 북한 측의 계산된 도발이었다. 결국 예상대로 미국은 판문점에서 북한 측과, 남한을 제낀 채 비밀협상전을 벌이며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1년 후에야 미국은 비공식적으로 북한에 자신들이 영해침범 했음을 사죄하고서야 배는 빼앗긴 채 82명의 승무원을 겨우 돌려받았다.

 

아무튼 이 두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는 향토예비군이 창설되고, 모든 고교 이상 학교에는 교련 과목이 필수로 채택되었다. 전교생이 동원되어 구덕운동장에 모여 김일성 규탄대회와 화형식을 지켜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엄청난 사건들과 함께 펼쳐진 ‘68년에 내게는 지나고 보니 곡절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꽤 괜찮았던 중2 생활이 시작된다.

 

<김준곤 선생과 새로 만난 학우들>

 

3월에 2학년 반편성이 되어 2-2반에 가니 담임은 국어 담당인 김준곤 선생이었다. 첫 모임의 키재기에서 이번에는 1학년 때보다는 6명이나 뒤로 가게 한 52번을 받았다. 김 선생은 전해오는 별명이 똥걸레거지니 할 정도로 후줄근한 양복 맵시에 얼굴도 까무잡잡한 데다 무슨 불독처럼 큰 주름들이 많이 잡혀 있어 상당히 꼬질꼬질한 인상이었다.

 

하지만 입을 열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세련된 표준말을 구사하는 데다 국어과목 수업에 대한 열정이 장난이 아니었다. , 모처럼 제대로 된 선생 한 양반 만났구나 하는 흡족함이 팍 들었다. 더군다나 성적 상위권으로 온 친구들을 미리 파악했는지 첫 수업에서 내 이름을 이미 아는 듯 불러주니 그저 국어시간에 대한 동기부여를 왕창 받았다.

중2 때 하복 입고 우리집 마당에서 photo 김재민
중2 때 하복 입고 우리집 마당에서 photo 김재민

 

난 이 양반에 의해 우리 국문법을 상당 부분 깨쳤다고 생각한다. 나만큼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 와이프가 지금도 구별 못하는 관형사와 형용사, 부사의 차이, 구와 절의 용법, 그리고 불완전 명사의 종류와 띄어쓰기법 등등을 이때 다 습득했다. 이렇게 고교시절까지 연결되는 국문법의 기반과 함께 선생이 제시하는 좋은 글읽기 텍스트들과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해설을 통해 우리말의 풍성한 표현력을 맛볼 수 있었다.

 

학급 반장에는 1학년에서 올라온 석차 순이었는지 성욱조가, 부반장에는 박승준이가 임명되어 아마도 이 둘이 1, 2등으로 우리 반에 온 것임을 짐작케 했다. 3~5등에는 누굴까 궁금했지만 2학년 시절을 지나면서 보니 나와 함께 유일성, 문규상이가 해당되었지 싶다. ‘망키라는 별명을 앞 학년에서부터 들고 온 뒤통수 짱구 박승준이는 1학년 때 우리반 김태우-신명철 라인처럼 성욱조-박승준 라인을 구축하여 저그 둘이 1, 2등을 계속 다해 먹은 것으로 기억한다.

 

수년 전 부경대 경영학과 교수 하다 캐나다에서 불의의 졸음 교통사고로 작고한 유일성이는 그 때나 고교 때나 가시나 같은 용모나 말투, 행동가짐으로 45번대 이후에서 공부와 운동, 결기(깡다구) 보임 등을 통해 영향력을 약간 누린 김모의 괜찮은 놀이 파트너가 되어주었다.

 

사실 이 친구가 집에서 독학만 하는 것 같은데도 공부를 곧잘 해 과외빨이 일상적이었던 내게는 묘한 열등감을 주니 성적 경쟁을 하면서도 장난을 빙자해 괴롭히기도 꽤 했다. 나쁜 놈.. (난 이때 잠깐 이 친구의 공부 호적수가 되었을 뿐 고교 이후에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80년대 초 문교부가 IBRD 국비장학금으로 보내주는 경영학 교수요원 양성 프로그램에서 만나 지는 텍사스 가고, 나는 함부르크 가는 석 달 사이 S상대 파견학습 연수장에서 다시 조우했다).

 

내 주위에는 1학년 같은 반에서 올라온 조용수, 김영수, 어청O, 정광모 등이 있었고, 다른 반에서 온 양재균, 박상국 등이 기억에 남는다. 중간 이후에는 우리 반 싸움짱이었던 한장호, 중간체급에서 집사 같은 행동책까지 데리고 씨니컬한 미소로 분위기를 장악하던 드러머 한용칠이, 그리고 태권도 하던 김용섭이가 떠오른다.

 

또 고교 때 보여준 기타연주 실력으로 내가 지금까지 흠모하는 조윤건이와 우리 동기회에서 프로 수필가급 글쓰기로 명성이 높은 박찬용이도 그때 처음 만났다.

 

토성교 시절 먼발치에서나마 서로 아는 척했던 성욱조는 예전에 내가 겪은 정중O이 이상으로 우리 2-2 반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누린 것으로 생각된다. 싸움짱들과도 좋은 관계를 가지는 걸로 봐서 이 친구들과도 좀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공부 면에서는 2학년 기간 내내 전교 1등을 거의 독식할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강자였다.

 

어떻게 공부벌레가 아닌 듯하면서도 압도적인 1등 지위를 지속적으로 누리는가 지금도 그 공부량과 학습방식이 베일에 가려져 있어 더 신비로울 정도이다.

 

이 천하의 성욱조가 한번은 체육시간에 여름 체육복 하의를 갖추지 않아, 맘에 들지 않으면 선생들도 옥상에 데려가 쥐어팬다는 사이코 체육선생 황선O에게 걸려 몇 명의 다른 학우들과 하얀 삼각빤스만 입고 토끼뜀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아니, 황선O이 저 무식한 노무 시키가 꼴랑 체육복 안 입고 왔다고 성욱조에게까지도 저리 개모욕을 주다니..’ 하고 속으로 한참 분개했던 기억도 난다.

 

조용수는 여전히 얌전한 범생이 모드로 내공을 닦으며 미래의 학업 추진력을 모으는 듯 했고, 가느다란 눈매에도 사극 연기력이 대단했던 양재균이는 주위 학우들이 당시 양 장군이라 불러줬다. 덩치는 작았지만 부당함에 대드는 깡다구가 있어 작은 거인이라 충분히 불릴 만했다.

 

그리고 나와 중고교, 대학, 하숙, 유럽생활까지 같이하게 된 박상국이는 당시 뒤통수가 툭 튀어나온 데다 혈색이 항상 벌거스럼해 아그들이 고구마라 불렀다. 지가 꼽았던 공부 호적수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으로 시험기간만 되면 며칠씩 밤을 새운 듯 눈퉁이가 부어 있었지만 절대 밤 따위 새우지 않고 잠을 너무 자서 눈쪽이 부은 거라는 말 같잖은 내숭을 떨었다.

독일유학 시절 함부르크 찾아온 박상국이와 엘베 강변에서 photo 김재민
독일유학 시절 함부르크 찾아온 박상국이와 엘베 강변에서 photo 김재민

 

커가는 덩치에 비해 그때까지도 변성이 되지 않아 앵앵거리는 목소리에 양 장군이 붙인 X’이라는 별명을 지금도 중학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 사이에는 지가 싫어하든 말든 애용하고 있다. 나와는 차차 소개하겠지만 잠깐씩 끊어졌다가 또 다시 엮여지는 끈질긴 실타래 인연을 질질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처음 만나는 색계에 홀딱 빠지다>

 

작년에 암으로 타계한 김영O는 내게 색계의 세상을 처음 인도해준 잊지 못할 친구이다. 토성인가 어딘가에서 한 해 꿀린 뒤 경중 들어온 친구인데 1학년 때에 이어 2학년 때에도 내 뒤에 앉아 공부 이외의 세상에 대해 자기가 아는 만큼을 아낌없이 내어놓던 잡기의 왕자였다. 탁구와 당구의 세계에는 그 시절부터 만만찮은 자질의 내공을 갖춘 듯했다.

 

2학년 여름이 되자 이 친구가 어느 날 남녀 간의 열합지정과 출생의 비밀을 제대로 알려 주었다. 물론 초등 시절에도 남녀가 x구리 뜬다하면 뭔지는 몰라도 해서는 안되는 금기행위인 줄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실제로 어떤 행위인지 꼬맹이급 우리는 사실 잘 몰랐다. 그때까지 나는 아이가 탯줄로 연결되는 것을 봐서 아마도 배꼽이 있는 배가 아니면 항문을 통해 나오는 줄로만 알았으니 말이다.

에로스와 프쉬케의 연애 photo 김재민
에로스와 프쉬케의 연애 photo 김재민

 

초등시절 과외스승이었던 백 선생에게 , 아이는 어디로 나오능교?’ 하고 물어도 씩 웃으며 나중에 차차 알게 된다하거나 너그 부모님께 물어봐라하고 즉답을 항상 비껴갔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부친이 어디선가 갖고 오는 미군잡지들에서 서양미녀들이 치부를 보일 듯 말 듯한 비키니 차림으로 있는 것에 아랫도리가 빳빳해지는 것을 자연의 숨겨진 이치처럼 경험했건만 남녀관계의 속시원한 내막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영O에게 니는 혹시 애가 어디로 나오고, x구리가 정확하게 무언지 아나?’ 하니 이 친구가 씩 쪼개며 아직 그것도 모르나? 애는 여자의 그곳에서 나온다. 그리고 x구리라 불리는 섹스라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상대의 그것을 계속 보고 있으면 남자 것은 빠딱 서고, 여자 것은 그 틈이 저절로 둥그렇게 벌어져서 그때 같이 교합을 할 수 있게 되제.. 그 결과로 아이가 만들어지는기라..’ 하며 십몇 년 동안 알고 싶었던 비경의 이바구를 드디어 속시원하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 상자 photo 김재민
열어서는 안되는 판도라 상자 photo 김재민

 

그 다음 날부터 가만둬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본 죗값처럼 눈앞에 나타나는 내 또래 이상의 여학생들과 성인여인들은 모두 신비로운 보물을 가진 특별한 존재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제대로 한번 벗겨 눈이 빠지도록 여체를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는 욕망의 대상으로 하루 사이에 바뀐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여체와 섹스에 대한 환상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했지 줄어들지 않았다.

 

오직 했으면 모기가 되어 그 당시 영화계의 히로인들이었던 문희나 윤정희가 샤워하는 목욕탕에 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하거나, 의대를 나와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장래 희망을 품었을 정도이다. 다른 한편 김영O가 소개해준 꿀단지같은 책을 보수동 책골목에서 사와 집에서 들키지 않게 한밤중 소등한 채 이불 덮어쓰고 후라쉬 전등을 켜고는 숨이 막힐 정도로 흥분해 읽기도 했다. 한마디로 꼴림이 뭔지를 드디어 제대로 알게 된 시기였다.

 

몽정의 단계를 넘어 수음이라 부르는 용두질도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주위 친구들로부터 좀 더 자세히 전해 들으며 서서히 익혀 갔다. ‘선데이 서울’, ‘주간경향같은 옐로 매체들은 집으로 사들고 와서, ‘아리랑같은 음란기사 전문의 잡지들을 만화방 같은 데서 죽치고 앉아 광분하듯 섭렵했다.

모딜리아니-장및빛 누드(1917) photo 김재민
모딜리아니-장및빛 누드(1917) photo 김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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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성적은 다행스레 별로 떨어지지 않고 그해 말에는 오히려 최고 수준까지 올라갔다 (전체석차 16/540). 아마도 사그라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번쩍거린다는 회광반조의 현상 때문이었으리라 짐작되기도 한다.

 

당연히 인과응보처럼 계산서는 서서히 전해져 왔다. 이런 환상의 세계에 빠져 혼자서 거의 범죄적 수준의 온갖 몽상을 하다보니 중3 때부터 성적이 완만하나마 하강기에 접어들었고, 경남고는 그때까지 어찌어찌 쌓아놓은 기본역량으로 들어갔지만 고교시절은 한번도 초등과 중학시절의 공부 맛을 못 본 채 그냥저냥 보내게 되었다.

 

<68년에 있은 국내외 주요 사건>

 

이 해 1월 말에는 곧 미국의 승리로 베트남전이 종료될 것이라던 웨스트모얼랜드 미 현지 사령관의 호언장담에도 월맹군과 베트콩이 그간 모아온 전력을 집중한 구정 대공세가 펼쳐졌다. 한때 사이공에 있는 미 대사관이 점령될 정도로 베트남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며 미군의 단기 승리 전망은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교착전이 지속되자 미국 내에서는 반전시위가 점점 가속화되었으며 결국 미군은 70년대 초 무렵부터 베트남에서 철군하는 쪽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구정대공세 때 생포된 베트콩의 처형 photo 김재민
구정대공세 때 생포된 베트콩의 처형 photo 김재민

4월에는 흑인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백인 인종주의자에 의해, 6월에는 63년에 암살된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이자 유력한 민주당 대권주자이던 로버트 케네디가 남부에서 유세를 돌던 중 중동계 테러리스트에 의해 암살되었다. 국내 신문들에는 특별한 심층보도 없이 그냥 사실 보도로만 소개되었다.

 

그 사이에 있던 5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기폭되어 서유럽 전체에 요원의 불길처럼 치솟으며 ‘6·8 좌파 청년혁명이 전개되었다. ‘45년 이래 형성되었던 냉전체제 속에서 지나치게 우경화 되었던 프랑스와 서독에서 기성체제에 반발하던 대학생 세력들이 급진좌파적 이념 속에 체제전복을 시도했지만 침묵의 다수라는 기성세대들과의 선거투표전에서 패해 극심한 좌절감을 맛봤다.

프랑스에서 기폭된 6·8 청년혁명 photo 김재민
프랑스에서 기폭된 6·8 청년혁명 photo 김재민

 

이들 중 일부는 붉은 여단’(이태리)이나 바더 마인호프 그룹’(서독) 등의 테러단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좌파급진 세력으로 구성된 적군파가 모습을 내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전 세계사적 운동이 별로 소개되지 않은 채 박정권의 3선개헌과 유신체제로의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프라하의 봄(1968) photo 김재민
프라하의 봄(1968) photo 김재민

 

8월에는 서구권의 6·8 청년혁명에 대응하듯 3월에 발생한 폴란드 대학생들의 봉기운동에 이어, 체코에서는 프라하의 봄을 한때 기대할 수도 있게끔 체코 대학생과 체코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두브체크가 선두에 선 반소(反蘇) 저항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국내언론들은 서구권의 6·8혁명에 대해서는 인색한 보도를 했으나, 체코의 상황은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의 탱크를 앞세운 강공진압에 두브체크는 실각하고 프라하의 봄은 잠깐의 일장춘몽으로 끝났다.

 

10월에는 64년 일본에 이어 멕시코에서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처음으로 19대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특히 여기에서는 4월에 암살당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추모하고, 미국 주류사회의 여전히 드높은 인종차별주의에 항의하여 육상 200미터 1위와 3위자인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 두 흑인선수가 시상대에서 초유의 성조기에 대한 저항 세리머니를 행하여 전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멕시코 올림픽-블랙 파워(1968) photo 김재민
멕시코 올림픽-블랙 파워(1968) photo 김재민

나도 이 방송을 당시 녹화중계로 봤는데 아직 전후 맥락을 잘 몰라 저 흑인선수들이 왜 자기조국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외국에까지 나와 머리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치켜세우는 저런 불경스러운 포즈를 취하나에 대해 잠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이것이 세계 유색인종 인권투쟁사에서 한 획을 그은 커다란 상징적 사건이라는 걸 그때는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한국선수로는 도쿄 올림픽의 정신조처럼 강원도 원주 출신 지용주가 복싱 경량급에서 준우승하여 은메달을 획득했다.

울진-삼척 공비침투 사건 보도(조선일보) photo 김재민
울진-삼척 공비침투 사건 보도(조선일보) photo 김재민

 

11월에는 1월에 이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또 일어났다. 이번에는 북한이 120명의 대규모 병력을 며칠에 나누어 파견했다. ‘이승복 어린이 살해 사건으로 기억되기도 했지만, 남한에서의 혼란조성과 게릴라전에 대한 산간 오지에서의 시험전 성격이 짙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두 달여에 걸쳐 공비병력은 그해 발족한 우리 향토예비군에게 실전훈련만 시켜준 채 거의 모두 사살되고 말았다.

 

<68년에 대한 단상>

 

68년은 국내적으로 정초에는 1·21 사태, 푸에블로호 나포, 연말에는 울진-삼척 공비침투 등으로 점철되었고, 국외적으로는 베트남전에서의 미국철수 조짐, 유럽에서의 6·8 청년혁명, 체코의 민주화 바람, 멕시코 올림픽 등으로 풍미되어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이런 격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에 나는 지구촌의 변화무쌍함을 이제 좀 굵어지기 시작하는 머리로 제법 또렷하게 감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인남자로 성장하는 데 당연한 통과의례인 사춘기의 에로스 세계에 너무 빠져 허우적거리며 누구보다 격심한 성장통을 겪었던 것 같다.

 

향후에도 수 년 이상 이쪽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 바람에 그 이전에 유지했던 명징스러운 이성의 총기들을 많이 손상시켰던 것 같아 서서히 아쉬움이 더해지는 첫 해로서 기억된다. 물론 학업 면에서는 마지막 찬연한 시절로서 뜻깊게 보내기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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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공 18.06.07 10:36

김박사의 1인칭 시점에서 그 시절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영어 문법은 그렇게 철처히 가르치면서 우리의 문법은 왜? 소홀히 하는 지를 모르겠습니다.

국민 학교 때부터 철저히 띄어쓰기, 구두점 등을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다 보니 지금에 와서도 헷갈립니다. 그래서 아직도 글쓰기의 콤플렉스에 빠져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박사는 좋은 국어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었습니다.

 

김재민 18.06.08 09:51

마공도 가만 보면 참으로 다양한 방면에 호기심을 많이 품고 있습디다. 우리가 더 젊은 시절에 오프라인 같은 데서 만나 술 한잔 하며 이런저런 이바구들 마구 교환하는 타임들이 많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뭉개뭉개 뜨네요. 그래도 만년에 최경룡이가 만들어준 여기 27홈피에서 같이 다양한 방담 글로써나마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라 여기외다. 여기서 흔쾌하게 댓글 달아주며 으샤으샤 해주는 다른 여러 동기아재들과도 말임다.

 

대기자 18.06.07 11:10

, 잊었던 세계사 공부까지 겸해서.. 침을 꼴깍거리며 보게 되네^^ 등장 인물인, 조용수 성욱조 박승준 양재균 박찬용... 한마디씩 하소~~~

 

대기자 18.06.07 11:12

박여사님은 더욱 더 남편을 사랑하시게 되겠네요. 다큐멘터리를 이러콤 재미있게 연출하니,,,여사님이 보든 말든 꿋꿋하게 정론을 휘두르는 김박, 홧팅!!!!

 

김재민 18.06.08 09:28

대기자님, 그런 말 마소. 마누라가 넘사시러워 죽겠다고 방방 뜨고 잇심다. '야이, 바바리맨같은 노출증 환자야!' 하고 말임다. 내 딴에는 거의 누구나 이 시기 다 겪었을 남녀상열지사에 대한 첫 배움의 흥분기를 좀 솔직하게 기술했는데 너무 나간 듯해 쪼끔 캥기기도 하네요.

 

대기자 18.06.08 11:36

@김재민 박여사님, 김박이 표현한건 평범한 사춘기 소년의 일상입니다. (남녀차이로) 잘 이해 안되실수도 있지만, 마 너그럽게 봐주이소 ^^

 

지박사 18.06.08 15:49

@김재민 조금도 켕길 것 없슴다... 수인공 말대로 평범한 일상일 따름인데요 멀... 원래 핍박이 있어야 또 명작이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꿋꿋하시기 바랍니다.

 

이법사 18.06.08 23:51

@김재민 맞아요, 특히 그 시기에는 그 문제 때문에 머리도 띵하고 공부에도 지장이 많지요. 안 그랬다면 다들 시험성적으로는 수석 차석 했을 거지만 그래 봤자 결국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 먹물 밖에 더 되었겠어요.

 

김재민 18.06.10 09:32

@이법사 법사의 격려글도 의미심장하네요. 맞소이다. 이런 시절을 사춘기에 거쳐야 아이가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요. 나의 어리버리한 책상물림 속성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이 과정을 거쳐 온 것에 대해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담금질기가 꽤 되었다고 믿심다.

 

백교장 18.06.07 13:13

다큐멘트리 보는것 같습니다.

1960년대 다큐멘드리 영화로 만들어도 되겠습니다

.

서토 준비하고 있습니까?

 

김재민 18.06.08 09:43

서토도 성장기를 거쳐 여기까지 온 자전적 스토리를 읊어보라 하면 몇 트럭이나 될 얘기거리가 있을 건데 한번 스을 기다려 보십시다.

 

지박사 18.06.07 16:42

반갑고 익숙한 이름이 많이 등장함에 놀랍니다. 상국, 용수, 일성이 (셋은 동신국교때 한반), 용칠이(옆반)이었던 친구들이고.. 잘들 모르겠지만 용칠이는 키는 작았지만 당시 동신 4학년의 싸움짱(전교1)이었음.. 나중에 동아고로 진학하고 검도부에 들어가서 펄펄 날았음.. 용칠이 형도 싸움짱이라 집안 형제들이 다 대단했음.

 

물론 욱조는 토성 2학년 초까지 한반이었고.. 2학년 2반에 당시 절친 신해진이라고 있었는데 동아고 해양대를 갔음. 한장O는 가출사건에 연루되어 전학을 갔어야 되었던 것 같고.. 어머님이 교무실에서 많이 우셨음... 나도 격동의 사춘기가 일찍와서 지금 생각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중2 시절임..

 

김재민 18.06.08 09:40

나도 지박사가 언급한 친구들과의 교집합 범위가 넓은데 대해 같이 놀라고 있심다. 이렇게 겹치나 하고요. 특히 한장O, 한용칠이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듯 해 흥미롭네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당시 2-2반에서 동신 출신 이계철이도 생각남다. 한번은 한용칠이의 보디가드를 자처하던 박철수(성은 명확하지 않음)란 친구와 교실에서 한판 붙던데 그 잽싼 싸움기술에 낌짝 놀랐심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야리야리한 인상의 친구였는데 어찌 그리 서강일이나 홍수환이처럼 잘 치던지요.

 

지박사 사춘기도 나못지 않은 격동의 시절이었던갑네요. 아 그래도 난 여자의 근원을 찾아 쪼그만 게 내면으로 폭주하던 그 시절들이 아리아리 함다.

 

대기자 18.06.08 15:35

"예술가는 자유로워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으뜸가는 연극연출가인 유덕형씨. 예수정(고대 독문과 73학번)이 대학 졸업후 어머니의 반대에 몰래 연기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를 만나 간곡하게 설득하며... 박여사님, 문필가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사토 18.06.09 15:30

지박사가 한 때나마 우리역사 연도를 세계사에 견주며..

"우리가 이럴 때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나?" 에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하신 바..

 

김박사가 이처럼 학년별, 연도별로 정리된 글을 올려주니.. 마치 칠흑같은 어두운 방에 조그만 촛불 하나를 밝힌 듯..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당시의 기억들이 하나씩 모습을 갖추며 나타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모두 다 적어내자면 끝이 없겠는데.. 완연히 갖춘 모습 몇 개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김신조 사건을 비롯하여 월남파병, 뤼브케 서독수상 방문 등 위에 올려진 사건들 대개가 기억에 있습니다만.. 프랑스 청년혁명/멕시코 올림픽 블랙파워는 전혀 기억에 없네요.

 

김재민 18.06.10 09:41

서토, 격려 멘트가 오늘도 실팍하요. 뤼브케 대통령 한국방문 건도 다시 떠오르네요. 그 당시 해운대 극동호텔에서도 묵었다는데 여독을 풀라고 국익 차원에서 붙여준 관기가 이 영감에게 성병을 옮겨줘 약간의 스토리가 만들어졌다는 루머 추억도 떠오름다.

 

서유럽 청년혁명은 나도 그 당시에는 우리 언론에 파편적으로만 소개되어 거의 몰랐네요. 후일 관련 도서와 문건들을 통해 차차 알게 된 사실임다. 멕시코 올림픽은 당시의 신문기사들이나 TV 방영을 통해 접해봤기에 비교적 소상한 기억이 남아 있고요..

 

서토 18.06.09 15:41

김박사가 그만큼 또래 대비 당시 세상을 큰 눈으로 보고 있었음을 알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정확히 50.. 즉 반세기 전의 이야기니 말이지요.

 

지금은 대개가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당시 김일성이 보낸 밀사를 박통이, 자신의 정치적 손실을 막기 위해 척살시킴으로써 발생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른 사건에서도 위기에 몰리자.. 자신 동료들 이름을 팔아 구사일생했다던 이바구와 같은 맥인데.. 지금도 그 전말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는 것은.. 광주사태나 천안함 건과 같다고 하겟슴미다.^^

 

암튼 당시야 아무것도 몰랐고, 그냥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했다는 말이 사실인 줄로만 - ^^

 

마닐라공 18.06.10 12:37

김신조의 1.26 사태는 1968년이고 황태성 간첩 사건은 1961년에 김일성의 밀사로 내려와서 박정희의 혁명 정부를 흔들려고 김일성이가 공작을 편 것입니다. 이승복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은 했다 안했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 죄없는 목숨을 그것도 칼로 입을 찢어 죽였다는 것에 촛점을 두어야 합니다.

 

김재민 18.06.10 09:44

여기서는 마공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네요. 나도 그리 생각함다. 김신조의 1.261.21로 알고 있심다. 박통 간 날이 10.26인데 좀 기억이 뒤섞인 모양임다.

 

서토 18.06.14 19:03

2 때 학교에 처음으로 검도반이 생기게 되어 당시 이를 적극 추진했던 체육선생님이

검도반에 들기를 권하기에.. 난생 처음으로 검도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부산대 학생이 사범으로 왔던 것으로 기억하는 바.. 상대가 내려치려 하는 순간, 오히려

상대의 신체 세 군데를 원샷에, 번개처럼 반격을 가하는 모습이 과연 "전광석화" 였습니다.

 

한 눈에 반하여, 입반하기로 담임선생께 이야기를 하니..

 

"이철이 니가 검도반에 가고나모 나는 우짜란 말이고- " 하시는 바람에(?).. 평생동안.. 너무나

후회되는 결정이 되어버렸지요,

 

지금도 죽도를 들고, "손목! 머리! 허리!" 외치며 골마루를 내닫던 학우들 모습이 쟁쟁히 -

 

지박사 18.06.09 17:59

나는 애지중지하던 울 강아지가 새상을 떠서 애간장과 억장을 태우고 누르는 슬픔과 분노를 풀려면 졸라 패든지 맞든지 해야 되겠다 싶어서 한달반 전부터 다시 검도도장에 나갑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라 몸상태 챙겨가면서 좀 살살 하는데 그래도 잘했다 싶네요.. 떠난 녀석이 내게 시간이란 선물을 준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근데.. 담임 선생님이 왜 검도를 못하게?? 혹시 김양자 샘이 담임인데 아끼는 서토가 다칠까해서? 아니면 둘이서 보낼 따사로운 시간이 줄어서???

 

 

마닐라공 18.06.10 17:56

서토가 어디 갱녀중이나 부산여중의 문예반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선생님이 오해 받을 멘트를 날렸습니다요~~~

 

이총장 18.06.09 17:52

김박사,

이런 재미있는 글을 이제사 봤네.

계속 올리주소, 열씨미 읽어 보리다.

 

김재민

18.06.10 09:46

이총장, 모처럼 여기 방문해줘 반갑네요.. 계속 잡문 글 애독해 주면 고맙겠심다.

 

마닐라공 18.06.09 22:10

<구정대공세 때 생포된 베트콩의 처형> 여기서 총을 든 사람은 응우옌 응옥 루안(阮玉鸞, Nguyễn Ngọc Loan)이라는 이름의 사이공 경찰서장, 사살당한 남자는 응우옌 반 럼(阮文歛, Nguyễn Văn Lém)이라는 이름의 베트콩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건 아님다. 그는 암살과 보복을 담당하는 베트콩 소대의 지휘자로 시가전 중에 학살당한 경찰 가족들의 시체 옆에서 체포됐다 하네요.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군사작전을 벌인 것도 아니기에,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쟁 포로의 대우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다 당시는 구정 공세의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고, 저기서 총을 쏘고 있는 응우옌 서장의 절친한 친구들의 가족들도 반 럼에게 학살당했다고 알려졌었네요. 하지만 이 모두는 사진을 촬영한 에디 애덤스가 당시 군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일 뿐 구체적 증거는 없다 함다.

 

김재민 18.06.10 10:59

이 즉결처형을 감행한 경찰서장이 베트남 패망 후 캐나다로 이주하여 살면서 자신의 이 충동적인 권총 처형을 구국결단의 심정 속에 행했다고 하는 인터뷰 보도를 보고 열 좀 받았던 기억이 남다. 예라이, 문디 자슥.. 도살자 짓을 하고 구국결단이라니..

 

지박사 18.06.09 23:45

.... 오래 되고 아는 얘기라 무심히 넘어갔는데 정말 여기 전쟁에서도 억장이 무너지는 한많은 사연이 얼마나 많겠십니까.. 베트남, 한국 등.. 남이 만든 이념과 패권 때문에 투견장의 개처럼 피흘리며 서로 물어뜯은 슬픈 역사입니다.

 

김재민 18.06.10 09:48

지박사의 베트남전 인식이 소생과 일맥상통해 적지 않은 동질감을 느낌다.

 

마닐라공 18.06.10 18:11

@지박사 월남을 패망으로 이끈 사진들 중에는 네이팜탄으로 벌거벗은 채로 울면서 거리로 나오는 여자 아이의 사진, 베트콩 즉결 처분 사진, 그리고 고엔디엠의 정부가 바비큐인가 하고 비양거렸던 원로 불교승려 틱 쾅 득(Thich Quang Duc)의 분신 사진이 꼽힙니다.

정적으로 보이는 사진이 알고 보면 역동의 에너지가 숨어 있는 무한한 에너지를 감추고 있는 블랙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지박사

18.06.12 17:57

펜은 칼보다 더 강하다는 그런 맥락 같음. 그런 점에서 현 한국의 질낮은 선정적 언론은 고질적인 큰 병폐임.. 잘 되야 할낀데..

 

서토 18.06.10 01:43

경고에 다니던 중에도 계속 머리가 깨지않아, 세견과 눈치가 부족.. 학교내에 도서관이 있는지.. 운동부가 있는지.. 주변 학우들이 과외를 하는지 마는지.. 성욱조 동기가 무스탕인가 하는 개인서클을 만들어 남포동 등지에서 개판을(?) 치고 다니는지 마는지 등을 당시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요.^^

 

그런데다 학업수준도 하위에 처져있다보니..마치 자신만 버려져 있는 느낌에 빠져.. 고교 3년이 저에게는 매우 힘든 시기였습니다. 어찌 보면, 시골학교 등을 전전하며 혼자 잘난줄 알다가.. 경남중고의 제대로 된 학우들 사이에 끼이면서.. 아주 큰 열등감과 낭패감을 가졌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회고됩니다.

 

김재민 18.06.10 11:00

3-6반 길창순 선생 반에서 우리가 같이 있은 기억이 지금에사 소롯이 떠오름다. 서토가 원형교실 유리창 있는 뒷줄에 앉았지요? 우수 어린 표정에 빠져있던 서토의 스냅들이 다시 얼핏 솟아남다. 우리가 동병상련의 처지 속에 그때 가깝게 얘기할 무슨 계기적 사건이 있었다면 꽤 괜찮았겠다 여겨지는데 그냥 그때는 모르고 떠나보낸 시기였는갑심다.

 

성단장이 멤버였다는 무스탕은 무슨 밴드단이었는지, 또 워커스라 불린 그룹과는 어떤 관계 속에 있었는지를 서토나 여기 다른 동기들이 안다면 좀 알려주시구려.

 

서토 18.06.10 02:20

중학 2학년 당시 담임은, 중년의 상업선생님이셨는데.. 그 분 덕분에 대차의 개념을 일찌기 깨쳐.. 당시 이미 3급부기 실력을 갖출 정도였습니다.

 

"다음 거래를 보고 A 사의 해당년도 대차대조/시산표,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라" 류의 문제를 당시에 얼마나 귀가 따갑도록 듣고 풀었는지..- . 그래서인지 대학 때는 회계학 수업에 거의 출석하지 않고도 A 학점을 받았지요. 중학시절에 얻은 개념 중 영어와 더불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김박사가 그 시절에 국어문법을 제대로 배웠다는 대목에서.. 상기의 기억이 살아나네요.^^

 

 

김재민 18.06.10 10:40

나와는 반대였네요. 우리도 중2 때 복식부기란 것을 배웠는데 나는 많이 헷갈립디다. 분개장, 원장, 총원장에 기록하는 양식들을 초장에 놓쳤던 터라 계속 허겁지겁 모른 채로 따라가던 기억만 남다.

 

고교 와서는 상업선생이 영화-쇼오군이나 라쇼몽, 도라도라도라 등에 나온 일본배우 미후네 도시로 인상의 윤윤혁(?)인가 하는 호남형 선생 얼굴과 연결되어 떠오름다.

 

서토 18.06.10 09:06

당시 여담임 선생님은, 저에게 학급의 여러 잡일을 맡기고 있었는데.. 아마 그게 부담이 되어

운동부 입반을 말리며.. 고입준비에 보다 주력할 것을 권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개성중은 부산 시내 중학교사 중에서는 가장 잘 지어진 육중한 콩크리트 건물로써. 인조대리석 처리된 복도의 길이가 매우 길었는데.. 검도반 학우들은 그 복도의 양끝을 맨발로 계속 뛰어 왕복하며.. 제대로 된 검도를 수련했다 기억합니다.

 

수년이 지나 고3학년 때인가..소식을 들으니 그들이 상급학교 진학하여 전국 우승 대부분을 차지했더군요. 그 소식을 접하며.. 많이 아쉬웠던 기억이 새삼 납니다.

 

인생 세 번 큰 기회 중, 하나를 놓친 사례로 꼽고 있슴미다.^^

 

지박사 18.06.10 05:56

검도부 우승 했어봐야 별 볼일 없습니다. 혹시 검도를 했었다면 서울대도 못갔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임... 하기사 P상고에 갔었으면 노통 후배로 연결이 되어서 지금쯤 장관자리 하나쯤 했을지도??

 

인생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마닐라공 18.06.10 13:17

@지박사

人生旅程誰知前 인생살이 그 누가 알까?

兩手結縛腹上放 양손 묶여 배 위에 놓이기 전에는

一悲一喜人生事 슬프고 기쁜 인생사

不知不覺到前門 어느 새 저승문전에 다다랐네

 

김재민 18.06.10 10:38

개성중이라 하면 그 당시 중학야구계에서는 대동중, 동성중과 함께 3강으로 날리던 학교란 이미지가 내 머리 속에는 박혀 있네요. 하여튼 한번도 가보지 못한 신비로운 학교로써 생각됨다. 동래중과도 이쪽저쪽 했심까?

 

검도반 얘기와 서토가 김양자 담임과 꽉 엮인 스토리도 아주 흥미롭네요. 안봐도 비디오처럼 그림 몇 개가 나올 것 같심다.

 

김재민 18.06.10 10:13

지박사의 고춧가루는 요 장면에서 좀 맵싸하네요. 서토가 검도계에서 검도관 관장이 되는 그림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이는데 말임다. 그래도 요런 냉소적 유머가 지박사의 괜찮은 캐릭터로 여겨짐다, 이 시절 검도계를 실제 겪어봤을테니 보는 눈이 우리보다 더 객관적이겠지요.

 

지박사 18.06.10 10:33

@김재민 나는 최종 졸업한 국교가 전포동의 동성국교라 개성중을 좀 압니다. 원래 개성중 부산이렇게 같은 계열 비슷했을 겁니다. 초딩때 인식이 경남, 부산중 다음으로는 개성중이라고 했습니다. 대신중 등은 후기 모집인데 개성중은 당당히 전기모집하던 학교였습니다. 서토 맞지요? 글고 부산상고가 지금은 개성고로 이름을 바꿨을 겁니다.

 

김의철 18.06.10 15:53

지박사가 개성중을 안다는 사실이 참으로 새롭습니다. 그간에는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더니.. 당시 경/부중에 충분히(?) 입학할 실력이 있으나.. 학교의 명성보다는 학교 건물에 더 관심 가진 미적감각을 일찌기 소지한.. 대단한(?) 초등 졸업생들이 주로 입학하던 공립학교였지요.^^^

 

바로 인근의 부산상고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고.. 건물의 여분이 많았기 때문에 제가

졸업한 직후인가.. 같은 건물에 개성고등학교가 새로 생겨난 것으로 압니다.

 

부산상고는 역사가 깊은 명문교인데.. 학교를 옮겼으면 옮겼지 개성고로 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누구 아는 동기들이 있다면 사실을 좀 알려주면 좋겠네요.

 

지박사 18.06.11 00:38

구글을 해보이 1895년에 부산개성학교가 생겨서 나중 부산상고로 바뀌고, 1951년에 부산상고와 개성중으로 분리됨. 이후 부산상고가 개성고로 개명하고 놀라지 마시라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고 함. .. 세상 좋네..

 

서토 18.06.10 15:51

마샬아트나 검도같은 호신술은 적정 시기에 잘 배워두면 여러 면에서 좋은 일인데..

그 때를 놓치게 되면.. 어느 수준에 오르기가 쉽지않다 생각합니다.

 

저는 중학 때도 비교적 큰 키였기에 늘 맨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유연성이 좋은 그 때 검도를 시작했다면.. 아마도 매우 높은 등급까지 갈 수 있었겠고..

 

지금의 집에는 늘.. 죽도와 명검을 실질적 장식품으로 놓을 수 있었을 터이니..

항상 아쉽게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현 거주지 인근에 일본인이 가르치는 검도 수련장이 마침 있어..

지금도.. 운동이나 정신수련 삼아 다녀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해 늘 생각만으로 자위하고 있지요.

 

마닐라공 18.06.10 16:46

칼을 아무리 휘둘려도 아무래도 총 앞에서는... 마지막 사무라이를 보면...

 

지박사 18.06.11 00:54

 

서토.. 일본 검도장에 가서 사범에게 함 문의 해 보소. 지금 시작할 수 있겠냐고. 갠찮다고 할끼요.. 무리하지말고 살살 1-2년 하면 금방 초단이 됩니다.

 

또 한가지는 해동검도를 하는 것이요. 내가 알기론 검법(자세) 중심이라 우리에게 더 어필 할 수도 있소. 더 늙기 전에 지금이라도 당장 저지르는 것을 강추함미다.

 

나도 나이들며 이것 저것 많이 시도했던 편인데 일단 저지르고 봐야 좋은지 안좋은지 압니다. 아니다 싶으면 중단하는 한이 있어도 안해보면 죽어도 모름.. 이것 저것 잴 시간이 없습니다

 

김교수 18.06.10 16:50

재민 박사의 세밀하게 짜여진 과거 추억과 기억의 그물망을 앞에 놓고

 

지구 여기저기서 사는 마공, 지박, 서토가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는 시공을 초월하기 직전의 시공간 경계에서 나누는 이야기 같네요. 공간적 거리가 없어지고 밤낮의 시차가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친구들이 아닌가요

 

성장의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가만히 오늘 엿듣다가 결국 끼어들게 됐네요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도 동기들을 위한 바라밀 행위죠.

말하자면 보시바라밀이죠.

 

선한 마음의 소유자가 아니면

이런 지식 나아가 지혜와 시간과 노력의 봉사를 할 수 없지요

 

무상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여러분의 노고에 인문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써 경의를 표합니다.

 

마닐라공 18.06.10 17:58

우리가 어디 남입니까? 김교수도 오다 가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갖고 낑기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

 

 

지박사 18.06.11 00:50

김교수 반갑심다.

 

일찌기 댓글 어딘가에 잠깐 언급한 기억이 있는데 해외파들이 원캉 외롭고하여 말이 많은 것 같심다. 이런 것을 통해서 외려 우리들이 더 위로받는 것 같습니다. 김교수의 너그러운 해석에 감사하며 때로 주책없는 수다떨기에 부끄러울 뿐이요..

 

김재민 18.06.11 09:50

김교수, 모처럼 이 자리에 행차해 주니 반갑기 짝이 없네요. 한번씩 찾아와서 고매한 인문학의 지식향연을 보시해 주시고, 고교시절을 함께 보낸 동학도로써 학창시절의 추억담 만드는 데에 갖고계신 추억들 흔쾌하게 좀 보태주시옵소서.

 

우리 카페지기 백교장도 한참 흐뭇해 하실 것임다.

 

김교수 18.06.13 14:20

김박사와 서토께서 중학시절의 상업 부기를 언급했는데,

 

난 농촌서 농업을 배웠기에 누에가 몇 잠을 자고 벼논의 물 온도는 몇 도가 적당하고

음지에 자라는 나무는 어떤 게 있고 요런 것들을 주로 배웠고

 

실습시간에는 선생님 댁 밭에다 독하디 독한 냄새로 숨쉬기 조차 거북한 학교 변소의 통오줌을 퍼다 배추나 무우 주변에 거름 주는 일이 일과였지요.

 

당시엔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무조건 외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도 그 시절 외운 메마른 기억 가운데 '음전편동분회비가주가솔녹'이란 구절을 외우고 있지요.

 

음지에 자라는 나무 종류인데 혹시 시험에 나올까봐 나무 이름의 첫 글자만 따서 만든 나만의 암기법이었소.

 

마닐라공 18.06.13 15:39

오줌도 삭혀 뿌려야지 그냥 생으로 뿌리면 작물이 타 죽는데...

 

김교수 18.06.13 14:34

일의 경중과 선후를 파악 못한 우둔한 소행이았소.

그런게 시험 문제로 나올 것이 아니었는데 책에 있는 것은 모조리 외워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지요.

 

문제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난 뒤에 발생한 겁니다.

 

윤윤혁 선생님이 상업이 중요 과목에서 비켜나 있었기에 두세 달 만에 한권을 떼고 마치는 수업이었소.

 

손에 침을 묻혀가며 어험 어험하며 나에게는 달리는 말처럼 책장이 넘어가는 데 부기다 분개다 차변이다 대변이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

 

정말 분개했고 나의 얼굴엔

부기가 부석부석했으며

차변 대변이 마치 중학 시절 실습이란 명분 하에 지독한 냄새나는 똥오줌을 나르던 실습시간에 나온 단어였지요

 

마닐라공 18.06.13 15:42

차변은 빌려 온 똥이니까 왼쪽에 놓고 대변은 대신 싼 똥이니까 오른쪽에 놓고 잘 못 떠서 나르면 길바닥에 다 뿌려짐미다...

 

김교수 18.06.13 14:44

이런 황당한 수업시간에 난 정신이 아찔해 있는 와중에 중학교에서 상업을 해온 반 친구들은 너무 행복한 시간처럼 척척 박사들이었지요. 선생님과 너무 죽이 척척 맞는 겁니다.

 

사실 상업 과목의 기본적 개념들에 대한 이해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 개념이었는데도 2개월의 상업시간, 그것도 윤선생님의 산만한 기침 소리와 함께 사라진 그 귀한 시간들이 사회인으로 살아가는데 종종 어려움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었지요.

 

그런 사정으로 이제 칠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신문에 나오는 경제 관련 기사를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음도 또한 사실이네요.

 

덤으로 남은 게 알다가도 모를 주문같은 '음전편동분회비가주가솔녹' 이네요.

 

마닐라공 18.06.13 15:43

음전편동분회비가주가솔녹-마치 대순진리교 주문 같습니다.

 

김교수 18.06.13 14:53

음지에 자라는 나무 종류 즉, 음수에는 전나무 편백나무 동백나무 분비나무 회양목 비파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솔송나무 녹나무 등

 

그늘진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들의 출석부를 7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나의 기억에서 떠나지 않고, 상업과 농업, 농업과 상업을 생각할 때마다 조용히 암송하는 음수들의 호명입니다.

김재민 작가·경영 컨설턴트 photo 김재민

<필자 소개> 김재민은 한국외대 독일어과, 연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온 뒤 산업경제연구원에 근무하다 도독(渡獨)하여 함부르크대와 함부르크 국방대에서 경영학 디플롬과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경영학 분야에서는 글로벌경영, 전략경영, 마케팅, 창업경영, 인문경영 분야를 주력으로 연구하고 강의했다. 이 과정을 현대경제연구원, 현대중공업, 부산 경성대에서 근무하며 수행하다 2020년 퇴임 이후에는 본격적인 프리랜서 글쓰기 작가와 스타트업 기업들의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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